“울퉁불퉁 멋진 몸매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내 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토마토”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 ‘멋쟁이 토마토’란 노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사를 크게 생각하지는 못했다. 토마토가 울퉁불퉁하게 생겼던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마트의 토마토는 모두 둥글둥글 매끈하게 생겼거나 둥글 길쭉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울퉁불퉁 생긴 토마토를 본 건 농민이 되고 나서도 한참 뒤인 토종 토마토를 접하고 나서다. 옥발 토마토는 정말 울퉁불퉁의 끝판왕이다. 붉은 옷을 입기도 하였고 멋진 몸매인 것도 어느 정도 맞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멋쟁이 토마토는 이제 더이상 시장에서 보기 어렵다. 아무리 토마토가 멋쟁이라 할지라도 쉽게 무르고 터져 오래 보관되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토마토 상업농 2년차인 나는 고민에 빠졌다. 토종 토마토를 계속 심을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내가 상업농이어서 그렇다. 자급농이었다면 토마토의 생김새나 무름 정도가 고민스러울 리 만무하다. 자급농이었다면 맛이 있으면 오케이. 게다가 재배가 어렵지 않다면 만사 오케이다.
쉽게 재배해서 나의 밥상에 제철에 올릴 수 있다면 그만큼 좋은 텃밭 농작물이 어디 있으랴. 토종 토마토는 맛이 있고 특이하며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매력이 있지만 쉽게 무르고 보관이 어려워 소비자에게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토종 토마토의 맛이 특별히 좋을 리 없고, 토종 토마토가 유통이 쉬울 리 없고, 토종 토마토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리 없지 않은가? 토종 토마토는 쉽게 무르고 맛은 메뉴얼적이지 않고 생소한 맛이라 소비자들의 궁금증 정도는 유발할 수 있지만 쉽게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토종이 사라지는 이유를 다시 한번 절감하고 공감하게 된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고 구할 수 없는 토마토라는 매력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매력이 농민에게 수익을 안겨 주지는 않는다. 재배가 더 쉽거나 재미있지도 않다. 어느 누구도 재배해 보지 않은 토종작물은 내가 처음 재배해 보는 것이므로 재배 매뉴얼도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 나만의 농사법으로 나만의 농산물을 생산해 내는 것이다.
토종농산물의 경우 교육용으로는 소비가 되기도 한다. 간혹 있는 교육용으로 소비되기 위해 상업농이 토종 토마토를 재배하는 건 여전히 어려워만 보인다.
작년 이맘때에도 이런 다짐을 혹은 이런 고민을 했었다. ‘내년에는 토종을 조금만 심자’ 혹은 ‘토종은 이제 그만심자’라고.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토종을 맨 먼저 심었고 양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판매에 애를 먹고 소비자들의 클레임을 받아내느라 버거워했다. 언제 수확해야 하는지 딸 때마다 실험이었고 소비자들에게 보내주면서도 갸우뚱거리기 일쑤다.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자연 그대로 농민장터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어렵고 힘들어 내년에는 토종은 심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건네니 “토종 농민이 토종을 안 심으면 되나요?”라는 질문이 바로 돌아온다. 토종 농민? 그게 뭐였더라? 토종농민은 생활비 없이 생활 가능한 농민인가? 해마다 기후위기에 맞서 농사를 짓고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작물을 선택하고 품종을 선택한다.
지금의 토마토는 멀리까지 보내지기 위해 무르지 않고 단단해야 한다. 토종이거나 재래종이거나 야생의 것일수록 벌어지거나 터지거나, 물러지는 것으로 익었음을 알렸다. 동물에게 먹혀야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있는 식물의 입장에서야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그런 점이 지금 토종 농민에게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토종 토마토는 이런저런 단점만 있고 장점은 전혀 없나? 씨앗을 매해 사야 한다는 수고로움과 불편함은 없다. 눈꼽만한 토마토 씨앗 한 알은 저렴한 것은 300원 조금 비싼 것은 500원까지도 한다. 오래되고 인기 없고 신품종으로 대체된 품종은 저렴하고 신품종이거나 단맛이 좋거나 병충해 저항성을 가졌거나 하는 것은 가격이 고가이다.
그런 씨앗을 농민은 해마다 사야 한다. 토마토를 먹으면서 씨앗을 받아두면 비싼 씨앗을 사지 않아도 되지만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려 수확해야 하고, 후숙을 잘 시켜 채종을 해야 한다, 눈꼽만큼 작은 토마토 씨앗을 잘 씻고 건조시켜 내년 씨앗으로 준비해둔다. 번거롭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내년 씨앗을 채종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치유과정이기도 하다.
좋은놈으로 골라 잘 익기를 기다리고 채종하고 내년에 그 씨앗을 심고 가꾸어 어떤 녀석들이 나오는지 확인해보고 모양이나 맛이 어떻게 유지 변화되는지를 살피고 지켜보는 과정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평화롭고 신비로운 과정이다. 불편하고 어렵고 복잡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 과정 과정이 또 하나의 삶이다. 이쯤 되니 내년에 난 토종 토마토를 가꾸고 있을지 아니면 토종 토마토는 전혀 없는 농장을 꾸리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김연주
전업농이 된지 6년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