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농민이 수확한 콩들. 알맹이 없이 껍질만 남은 쭉정이와 병든 콩들을 고르기 전이다. (사진=김연주 제공)
토종농민이 수확한 콩들. 알맹이 없이 껍질만 남은 쭉정이와 병든 콩들을 고르기 전이다. (사진=김연주 제공)

콩을 고르고 있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듯 했지만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눈알이 빙글빙글 돌아갑니다. 7kg 한 말을 고르는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지푸라기는 바람에 날렸습니다. 한번 손을 본 콩을 소비자에게 보내기 위해선 다시 몇 번 손을 거쳐 다듬어야 합니다. 쭉정이(알맹이가 없는 곡식)도 골라야 하고 한 귀퉁이가 보라색으로 변해버린 콩도 골라내야 합니다. 간혹 돌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콩 크기와 비슷한 풀 씨앗이 몰래 숨어 있기도 합니다. 

쟁반에 콩을 쏟아 놓고 빙그르르 한바퀴 돌리면 잘 여문 콩들을 또르르 구르지만 쭉정이가 된 콩들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움직임이 없습니다. 이런저런 비상품 콩들을 골라내고 선별이 된 콩들은 반짝반짝 윤이 납니다. 내가 농사지은 콩이라서 그런지 이리도 예쁠까 싶습니다. 저녁에 시간이 날 때면 따뜻한 곳에 엉덩이를 깔고 또르르 또르르 콩을 고릅니다. 콩 고르는 소리와 간혹 내리는 빗소리와 밤이 깊어가는 소리가 고요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 구좌읍은 당근과 무의 주산지지만 콩 재배량도 꽤 됩니다. 부모님도 콩농사를 여러 해 지으셨고 우리도 콩농사를 짓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농사가 콩농사라지만 몇 해를 지어보니 콩농사 만큼 어려운 농사도 없다 싶습니다. 씨앗을 파종하고 한여름 뙤약볕에 콩밭을 매는 것쯤은 일도 아닙니다. 수확하고 선별작업을 일일이 손으로 합니다. 동그란 양은 상에 콩을 한 솔박(나무로 만든 바가지) 덜어놓고 이리저리 굴려가며 콩을 고릅니다. 콩나물콩은 알이 작아 작업량은 장콩보다 더 많아 보입니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선 대부분 콩나물콩을 재배합니다. 

어머님집엔 아침일찍부터 동네 여자 삼촌들이 다 모였습니다. 방과 마루에 콩 마다리(자루)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양은 밥상도 여럿 펼쳐져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동네 어르신이 몇분 더 오셨습니다. 겨울치고는 꽤 따뜻한 날씨 덕에 마당에도 양은 상을 펼쳤습니다. 콩알도 마당 여기저기 방구석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고 박혀 있기도 합니다. 이야기꽃을 피우시면서 한알 한알 콩 선별작업을 이어갑니다. 선별을 마친 콩은 다시 40kg 마다리에 다시 담습니다. 눈이 침침하신 어르신들은 돋보기를 끼고 구부정한 손으론 그 작은 콩나물콩을 집어내기도 힘겨워 보입니다. 허나 하루종일을 허리한번 펴지 않고 작업을 이어갑니다. 

콩이 잘 여물었다. 태풍이 없어서 그나마 푸른독새기콩이 작황이 괜찮다. (사진=김연주 제공)
콩이 잘 여물었다. 태풍이 없어서 그나마 푸른독새기콩이 작황이 괜찮다. (사진=김연주 제공)

며칠 전 콩을 고르면서 새로운 소식을 하나 들었습니다. 윗마을 어디에 색채선별기가 들어 왔다고 합니다. 구좌농협에서도 색채 선별기 하나쯤 들여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는 해마다 하던 참이었으니 다시 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농협에서 그런 장비를 들여놔 주면 농민들이 일일이 밤을 지새우며 손으로 선별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콩 재배면적이 많지 않고 기계를 들여와서 수익이 날 정도는 아니니 들여오지 않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콩에 신경쓰지 않아도 당근과 무만으로 충분한 것인지도 모를 일 입니다. 

부모님이 콩농사를 그만두시고 우리 부부가 콩농사를 지은 첫해였습니다. 꽤 많은 양의 콩을 수확해놓고 뿌듯함도 잠시 콩고를 생각에 아득해졌습니다. 한알 한알 내 손을 거치지 않고 판매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하시던 대로 양은 밥상을 펼치고 콩을 고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콩고르기 작업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핸드폰을 들고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콩을 손으로 꺾어모아 탈곡기로 탈탈거리며 4명이 한조가 돼 탈곡을 하고 탈곡한 콩은 손으로 일일이 골라 수매를 하면 1등, 2등, 등외 도장이 쾅쾅 찍힙니다. 우리 동네에서 콩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과정입니다. 

그날 아는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신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농협에 밭 번지만 알려주면 나중에 통장으로 돈이 들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의 풍광이 이리도 다를 수 있다니. 수소문 끝에 우리는 함덕농협으로 콩 마대를 싣고 갔습니다. 그리고 통장으로 돈이 입금됐습니다. 벌써 몇년 전의 일이지만 우리 동네는 아직도 콩을 손으로 선별하고 있습니다. 소농들이 마련할 수 없는 큰 설비를 마련해주고 농민들이 조금이나마 편하게 농작업할 수 있게 도와주고 농가 소득을 올리는데 기여해야 하는 게 농협이나 관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요? 스마트팜이니 AI 시대니 목소리가 높지만 고령농 소농들의 농법은 비웃음거리나 되고 조금의 지원과 관심도 없는 야박한 세상이라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 비예보가 이어져 있습니다. 아직도 수확하지 못한 콩이 여기저기 썩어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작황이 좋지 못한 콩이 수확시기에 수확도 못한 채 비를 맞고 서 있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콩을 보면서 뿌듯하듯 밭에서 썩어가는 콩을 어쩌지 못하는 농민의 가슴은 콩과 함께 썩어가고 있습니다. 돈벌이가 되는지 계산기만 두드리지 말고 지속 가능한 농업, 농촌, 농민을 위해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계산해 보시길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김연주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지 6년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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