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림 비닐하우스를 시작하면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비닐하우스 농사에 발 들여놓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비가림 비닐하우스 농사를 시작하면 노지 농사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노지 농사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운 토마토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선뜻 시작했지만 막상 토마토 농사도 그리 신통치는 못했다. 비료나 농약이나 미생물 등 자재를 쓰지 않고 하는 ‘무투입 재배’로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물이지만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시장에서 ‘스마트팜 토마토’와 경쟁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스마트팜 토마토는 스마트팜 구조에서 토마토톤이라는 호르몬을 수정하고 연중 생산이 가능하도록 대규모 화석연료를 투입하는 등 노지 토마토와 많은 것이 다르지만 시장에선 그저 토마토일 뿐이다. 싸고 매끈한 토마토와 그렇지 않은 토마토, 혹은 비싸고 못생긴 토마토와 전혀 그렇지 않은 토마토로 구분될 뿐이다. 조금의 차이 따위에는 신경도 안 쓰고 그저 탐스럽고 착한 가격이면 만사 오케이다.
비가림하우스 시설이지만 관행처럼 비닐멀칭(작물 위에 비닐을 덮는 것)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에 밭갈이와 기비를 하고 두둑을 만들어 바닥 비닐멀칭을 한다. 풀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보온 효과도 뛰어나다. 공급된 수분을 쉽게 증발시키지 않아 수분 유지에도 좋다. 여러모로 이점이 있어서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비닐 멀칭을 한다.
비가림하우스 농사를 짓는 것조차 편하지 않은 마당에 바닥에 멀칭을 비닐로 하는 것만은 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농사짓기 시작했다. 첫해에는 전 작물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맨땅이 드러나 있는데도 그대로 시작했다. 지금은 유기물이 많아져서 풀멀칭이 대부분 돼있다. 그래도 상추 두둑은 멀칭하지 않았다. 상추 모종 사이의 풀멀칭은 상추 수확을 꽤 성가시게 해 아예 포기했다. 겨울 작기에도 잎채소를 여러 종류 심어 기르고 있는 중인데 점적호스가 깔린 두둑 위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종을 심어준다.
우리 집 상추를 수확하는 날은 해가 쨍한 날이어야 한다. 상추에 이슬이 맺혀 있으면 상추를 수확하면서 흙이 많이 묻어버린다. 소비자들에게 흙이 많이 묻어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란단 안내를 미리 하고 주문자에게 배송된다. 나의 소비자들은 대부분 무투입 재배 농산물의 건강함을 믿고 구매하시는 분들이니 후기에 흙이 묻어있어서 불편하단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지역 로컬에선 흙이 묻어 있는 상추라는 이유로 외면받는다. 하긴 나의 상추 말고는 그 어떤 상추도 흙이 묻어 있지 않다. 흙은커녕 세척을 깨끗이 하고 진열된 것처럼 깔끔하고 멀끔하다. 흙이 묻어 있어서만은 아닐 테지. 그 어느 집 상추보다 잎이 작고 그 어떤 상추보다 부드러워 보이질 않으니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다. 지역 로컬에 상추를 내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소중한 경험을 여름이 유난히 길었던 2024년 연말이 되어 다시 한번 더 아로새긴다.
토마토의 수정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별 관심 없이 상품을 선택하고, 상추의 재배환경이 지구의 환경에 얼마만큼 부하를 주는지 신경 쓰지 않는 소비자들의 선택이 아쉽다. 비단 내 농산물의 판매가 일어나지 않아서 만이 아니다. 내가 소비자로서 다른 농산물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올가을 샤인머스캣을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연달아 두 박스를 구매하고선 아차 싶었었다. 달콤함과 향기로움에 정신이 팔려 지베렐린(식물 생장을 조절하는 식물호르몬) 처리를 두 번이나 해야지만이 달고 풍부한 포도알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좀 더 건강한 농산물이 생산되려면 더 건강한 방식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소비자가 원해야 할 것이다. 상추에 흙이 조금 묻어 있는 것이 구매를 유보할 만큼 치명적인가?
김연주
전업농이 된지 6년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