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궤’라는 제주말이 있습니다. ‘궤’는 자연적 ‘굴’, 특히 바위틈에 생긴 빈 공간을 말합니다. 주먹만 한 것에서부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것까지, 크기와 상관없이 ‘궤’라고 부릅니다. 딸이 시집갈 때 아버지가 만들어주는 ‘반닫이장’ 또한 ‘궤’라고 합니다.
정성과 여유가 있는 집은 값 비싼 굴무기(느티나무)나 사오기(산벚나무)로 ‘궤’를 만들었고, 정성은 많지만 어려운 집은 마당에 심어놓은 먹쿠실낭(먹구슬나무)으로 만들었다고 하네요. 굴무기로 만든 ‘궤’를 높이 쳤지만, 사오기로 만든 ‘궤’ 또한 고급이었습니다.
제주 ‘궤’의 문짝을 연결하는 경첩은 보통 셋입니다. 그 옛날 비싼 철로 만들었으니 경첩을 둘만 달아도 괜찮았을 텐데.. 제가 지금까지 본 ‘궤’는 모두 경첩이 셋이었습니다.
인터넷에 확인해보면 육지 반닫이장의 경우, 경첩이 둘 또는 넷인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공항 근처에 제가 가끔 들르는 골동품 집이 있습니다. 제주 ‘궤’의 경첩이 셋인 이유를 사장님께 물었습니다. 제주 ‘궤’가 일반적으로 경첩이 세 개인 것은 맞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자신도 잘 모르겠다더군요. 그러면서 육지와 제주가 다르겠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사실 육지 반닫이장이나 제주의 ‘궤’나 그 구조가 다르지 않기에 제주 ‘궤’만 특별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답은 오리무중인데 왜 질문만 명약관화해지는 것일까요? 고가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저로서는 마땅한 답을 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질문과 잘못된 집착으로 글머리를 열어봅니다.
“제주의 궤는 경첩이 왜 셋일까요?”
2. 제주에는 일만팔천의 신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일마다, 인간이 대하는 모든 사물마다 신이 깃들어 있는 셈입니다.
아이를 점지해주고 산모의 출산과 아이의 건강을 지켜주는 산육신産育神은 영급 높은 신으로 추앙받습니다. 산육신을 이르는 여러 이름이 있으나 제주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삼승할망’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할망’은 여신을 이르는 관용적 존칭입니다. ‘삼승’의 ‘승’은 ‘이승’, ‘저승’처럼 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합의된 것 같지만 ‘삼’의 의미는 여럿입니다.
'삼'은 ‘석 삼三’이 아니라 '삼기다'('생기다'의 옛말)에서 온 말로, '아기를 잉태시키다'의 의미를 가진 말의 어근이다. (인용:현용준, ‘제주도 신화의 수수께끼’)
'삼줄'(탯줄) 등의 사례로 미뤄 '삼신‘의 ’삼‘은 포태(胞胎, 아이나 새끼를 배다)의 뜻이 있다. (인용: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원형백과)
이에 의하면 ‘삼승할망’의 ‘삼’은 ‘석 삼三’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삼승할망’을 모셔 기원 올리는 굿을 ‘불도맞이’라고 합니다. ‘불도맞이’가 시작되면 옥황에 계신 ‘삼승할망’은 ‘북두칠원성군’과 휘하의 많은 하위 신을 거느리고 굿청(제장祭場)으로 내려옵니다. 여러 제차祭次가 이어진 후 ‘추물공연’ 말미에 배례가 끝나면 ‘삼승할망’과 ‘북두칠원성군’은 다시 옥황으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삼승할망’을 뒤따라 내려온 하위 신들은 지상에 남습니다. 이 하위 신들을 ‘할망상’이 차려진 큰 방에 모시는 연행을 ‘잉어메어살림’(또는 ‘안방으로 메어듬’)이라 합니다.
‘잉어메어살림’이 시작되면 심방과 제주祭主는 기다란 ‘할망도리’ 양끝을 붙잡고 서로 밀고 당기는 연기를 합니다. ‘할망도리’는 하늘에 있던 신이 인간세계로 넘어오는 다리로 굿청에 깔아놓는 하얗고 긴 면포를 말합니다. 마당에서 ‘할망도리’ 한쪽 끝을 잡고 있던 심방은 제주祭主의 당김에 못이기는 척 이끌려 큰 방으로 들어갑니다.
큰 방에서 제주는 심방의 손에 들린 ‘할망도리’ 끝자락을 건네받고 ‘할망도리’를 말아 ‘할망상’ 위에 올립니다. ‘할망도리’와 함께 ‘할망상’에 좌정한 하위신은 ‘삼신三神’으로 ‘구덕삼승’, ‘업개삼승’, ‘걸레삼승’이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불도맞이’가 끝나면 ‘할망도리’를 잘 개어 ‘궤’ 안에 담아 보관합니다. ‘할망도리’와 함께 ‘삼신’도 ‘궤’ 안에 따라 들어가 좌정하셨을까요? 거기까지는 모르겠으나, 산모나 아기가 갑자기 아플 때, ‘궤’ 위에 메(밥)와 갱(국)을 올려 비념을 드린다고 합니다. 메와 갱은 ‘삼신’에게 올리는 것이겠죠? 그렇다면 옥황에 계신 ‘삼승할망’이 먼 걸음 하실 필요 없이 비상대기하던 ‘삼신’의 신속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만약 ‘궤’가 ‘삼신’이 좌정한 곳이 맞다면 ‘삼신’과 경첩 사이에는 ‘삼三’이라는 수로 연결됩니다.
‘삼승할망’은 ‘본풀이’에서 ‘멩진국따님애기’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굿을 연행하는 심방의 사설 속에서는 다양한 존칭으로 불립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이름은 ‘천왕불도’, ‘지왕불도’, ‘인왕불도’입니다. 셋을 합쳐 ‘삼승할망’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삼승할망’의 ‘삼’이 ‘삼三’은 아니라지만 ‘삼승할망’의 세계가 ‘삼三’이라는 수와 연결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다음은 제주신화연구소장 문무병 선생의 주장입니다.
‘할망송낙’이라 하는 고깔을 세 개 올리는 것을 보면, 산신(産神)을 셋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북방 샤머니즘의 3·1신관에 입각하여 산신(産神)할머니는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라는 생각, 즉 3·1관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인용:문무병, 문무병의 제주, 신화 2, 제주의 소리)
정태춘이 곡을 쓰고 박은옥이 부른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시집 올 때 가져온 양단 몇 마름
옷장 속 깊이 깊이 모셔 두고서
생각나면 꺼내서
만져만 보고, 펼쳐만 보고, 둘러만 보고
석삼년이 가도록 그러다가
늙어지면 두고 갈 것 생각 못 하고
만져 보고, 펼쳐 보고, 둘러만 보고
하지만 제주 여성들이 시집올 때 가져온 ‘궤’는 노래 속의 옷장처럼 자신의 소중함만을 보관하던 곳이 아닙니다. ‘양단 몇 마름’의 아름다움을 넘어 아이를 보살피는 할마님의 신성함이 깃든 곳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할머니 방에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궤’가 있었습니다. 대체 그 안에 뭐가 있나 궁금해서 할머니 몰래 ‘궤’를 뒤져본 적이 있습니다. 어두운 ‘궤’ 속을 뒤적이다가 꼬깃꼬깃 접힌 돈뭉치가 손에 잡혔습니다. 할머니는 ‘궤’ 안에 손자 걱정을 꼬깃꼬깃 숨겨두었건만, 손자놈은 그 꼬깃꼬깃은 남겨둔 채 돈만 슬쩍 빼내 오고 말았네요. 하기사 할머니 냄새로 잔뜩 찌푸려진 어린 저의 눈에 할머니의 손자 사랑과 신에 대한 경외심이 보였을 리 만무했겠죠.
여기까지 쓰고 보니 제가 던진 이상한 질문, “제주의 궤는 경첩이 왜 셋일까요?”는 무의미해진 것 같습니다. 뭣이 중한디.. 하지만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까지의 저의 추정만으로는 경첩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없었습니다. ‘경첩 셋’이라는 가구의 물리구조적 결과를 억지로 의미의 장에 우겨넣은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육지 반닫이장의 경첩 또한 셋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제주 ‘궤’와 육지 반닫이장에 대한 비교 분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의 능력 밖의 일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뭣이 중한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중하지 경첩이 중하겠습니까? 잘못된 집착으로 얻은 결론입니다.
3.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청산별곡의 한 대목입니다. 여기서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믤 이도 괼 이도 없이’라는 말이고, 이는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입니다. ‘괴다’는 중세 국어로 ‘사랑하다’라는 뜻입니다. 옛 제주어 ‘궤다’ 또한 ‘사랑하다’라는 뜻입니다. ‘괴다’와 ‘궤다’, 이 둘은 표기만 다를 뿐 발음은 비슷하고 뜻은 같습니다.
‘괴다’ 혹은 ‘궤다’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요? 저는 ‘밑돌 빼어내 윗돌에 괴다’라는 속담에서 그 본 뜻을 찾아봅니다. 여기서 ‘괴다’는 밑에 무언가를 ‘받치다’라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받치다’를 피동적 의미로 바꾸면 ‘내가 무언가를 받들다’가 됩니다.
이렇게 ‘받치다’를 ‘받들다’로 변형하면 ‘궤’를 포함한 여러 제주어의 상통하는 일맥과 만날 수 있습니다. 제주 옛 어른들은 무언가를 소중히 다루라고 당부할 때, ‘궤양하라’라는 말을 씁니다. 제사에 올릴 음식 재료를 ‘궵씨’라고 합니다. ‘궤’라는 말 속에는 소중한 대상과 그것을 받들어야 할 행위가 심겨 있는 듯합니다.
동굴을 뜻하는 ‘궤’는 어떤가요? 흙을 파거나 돌을 쪼아 만든 굴은 ‘궤’라고 하지 않고 ‘곰’ 또는 ‘고냥’이라 합니다. 과거 일본군 진지동굴 강제노역에 다녀온 할아버지는 ‘곰 파레 갔다왔져’라고 했다고 합니다.
‘궤’는 보통 밑돌이 윗돌을 받치면서 생긴 바위틈 사이의 빈 공간을 말합니다. 제주는 마을마다 본향당이 있습니다. 당 주변에는 이런 ‘궤’가 많습니다. 당에서 큰 제를 치르고 마무리할 때가 되면 심방은 당골(신앙민)들이 준비해온 제물의 일부를 떼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위틈에 담습니다. 신이 흠향하고 음복할 제물이 담기는 곳이 바로 ‘궤’입니다. 여기서 ‘궤’는 형태상으로는 돌들이 서로를 받쳐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당골들이 신을 받드는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고인돌의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에도 고인돌이 많습니다.고인돌은 밑돌을 괴어 거대한 돌을 들어 올려 만든 빈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곳엔 가장 존귀한 존재, 혹은 강력한 권력자의 죽음이 담깁니다. 고인돌 또한 밑돌을 괴어 윗돌을 받치는 형태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거대한 돌을 마을의 총역량으로 받들고 있는 형국입니다.
‘고인돌’을 줄이면 ‘괸돌’입니다. 제주말로 하면 ‘궨돌’이 되겠지요? 일가 친족을 이르는 제주어인 ‘궨당’은 ‘권당’眷黨에서 온 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일가一家를 받드는 무리黨라고 해석해 본다면 앞서 말한 ‘궤’의 일맥과 상통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시집가는 딸에게 선물하는 ‘궤’는 어떤가요? 사방에 나무판을 세워 윗판을 받침으로써 빈 공간을 만듭니다. 전술했다시피 ‘궤’ 속은 ‘할망도리’가 보관되어 있으며 ‘삼승할망’과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 할머니의 받듦을 받았던 것입니다.
‘부부’를 이르는 옛 제주말 중에 ‘궤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가 ‘벗 우友’라면 ‘궤우’는 서로를 받드는 벗인가요? ‘궤우’가 서로를 받들어 만든 빈 공간 속엔 무엇이 담기나요? 가정? 아이? 행복? 미래? 그것이 무엇이건 ‘궤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겠죠? 그리고 그러함을 일러 사랑이라 해도 틀린 해석은 아닐 듯합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꾀르는 ‘악惡’이라는 말의 기원을 추적했습니다. 자신의 책, ‘악의 상징’에서 ‘악’은 원래 ‘얼룩’이나 ‘흠결’이라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물리적 상태나 속성을 기술하는 말이 추상화되어 관념어로 탄생하게 되는 배경을 설명합니다.
제주어 ‘궤’ 또한 원래 물리적 상태나 속성을 기술하는 말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궤’라는 말이 오랜 시간 동안 인간관계 속에서 직조되어 끝내 사랑이라는 추상적 질감을 얻게 된 것은 아닐까요? ‘폴 리꾀르’의 이론에 기대어 상상해 본 이 상상을 뭐라 해야 할까요? 궤의 상징? 사랑의 상징?
고승욱.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미술을 전공했다. 뜻한 바는 없었으나 솔잎을 먹다 보니 어느덧 미술에 업혀 살고 있다. 10년 전 고향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는 너무나 뜻이 많은 곳이었다. 뜻의 미로를 헤매다가 제주민속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과 제주민속의 연결 고리를 찾느라 고민하고 있는 나는 벌써 중년이다. 뒤늦은 이 고민이 뒤늦은 도둑질이 되기를.. 업둥이는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