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광민 선생의 저서, 『한국의 바구니』와 『東의 生活史』를 읽고 쓴 바구니에 대한 감상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바구니의 이름과 쓰임은 모두 위 저서를 참고했습니다.
1. 천을 짜는 전체 과정을 ‘길쌈’이라 합니다. ‘길쌈’에서 ‘쌈’은 무슨 뜻일까요? 먼저 ‘삼다’의 쓰임을 보면 ‘너를 자식 삼아’, ‘실패를 거울 삼아’, ‘책을 벗 삼아’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삼다’는 ‘무엇을 무엇으로 여기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둘이 연결되어 하나가 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쌈’에서 ‘삼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대마’나 ‘모시’ 껍질을 벗겨내고 이를 찌고 말려 실처럼 가늘게 여러 갈래로 갈라냅니다. 그리고 하나의 갈래 끝을 다른 갈래 끝과 이어 붙여 긴 실을 만드는 과정을 ‘삼기’라고 합니다.
‘삼다’와 이웃한 표현으로 ‘맺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형제를 맺다‘, “부부의 연을 맺다.” ‘삼다’와 ‘맺다’는 ‘연결’이라는 의미에서는 비슷한 말이지만, 연결 강도에서는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삼다’가 한 손을 맞잡은 것이라면 ‘맺다’는 양손을 맞잡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죠?
운동회 하면 줄다리기가 떠오르지만, 남자애들은 신나는 ‘기마전’을 떠올릴지 모릅니다. 기마’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3인의 어깨와 팔을 결합하여 말이 되고 그 위에 기수가 올라타 다리를 겁니다. 기마 생존은 4인의 결합 상태에 달려 있습니다. 3인의 말에 기수의 허벅지를 바짝 조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4인의 결합을 네 가닥 실(絲)로 바꾸면 천의 짜임이 되고, 네 가닥 대(竹)로 바꾸면 바구니의 짜임이 됩니다.
한반도 남쪽은 대나무를, 북쪽은 싸리를 이용하여 바구니를 짰습니다. 10월 물이 빠진 대나무를 결어서 만든 바구니는 쇠처럼 단단하여 평생을 쓴다고 합니다. 하지만 바구니의 단단함은 재료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구니의 견고함은 재료의 단단함을 힘의 짜임으로 연결하고 이를 구조의 짜임으로 완성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수많은 기마들을 수직과 수평으로 결었기에 부부 인연만큼이나 단단한 바구니가 탄생했던 것입니다.
2. 상군 해녀에게 잘 보이려면 불턱에서 불을 지필 지들커(땔감)가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 애기 좀수 순이는 발로 꾹꾹 밟아가며 ‘질구덕’이 터지도록 지들커를 담았다. 삐죽삐죽 삐져나온 지들커 위에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망사리’와 테왁을 올려놓으니 족두리를 쓴 것 마냥 제법 모양이 난다.
‘물구덕’을 지어 나르느라 허리가 꾸부정해진 어린 것들은 첫 물질 나가는 언니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갯가의 허리 굽은 할망은 대견한 듯 애기좀수들에게 손짓을 한다. 할망의 ‘촐구덕’엔 우미가 한 가득인데도 할망의 손놀림은 쉴 새가 없다. 불턱엔 벌써 도착한 해녀삼촌들로 바글바글하다. 애기업개를 구하지 못한 덕이삼촌은 ‘애기구덕’을 등에 지고 질구덕을 양 손에 들고 뒤뚱거리며 불턱으로 들어온다.
제주에서는 ‘바구니’를 ‘구덕’이라 부릅니다. 등에 지어서 ‘질구덕’, 물항(물항아리)을 담아서 ‘물구덕’, 허리에 차서 ‘촐구덕’이라 부르고, 애기를 담는 요람을 ‘애기구덕’이라고 합니다. ‘망사리’는 억새의 미삐쟁이(꽃이 피기 직전 상태)를 엮어서 만듭니다. 미역을 담아서 ‘미역 망사리’, 고지기를 담아서 ‘고지기 망사리’, 소라 전복을 담아서 ‘헛물애 망사리’라 부릅니다. 해녀의 ‘망사리’ 또한 담는 도구이니 바구니의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해안마을의 풍경이 완성되려면 물고기를 잡는 완도의 ‘통바리’, 물고기를 담는 강진의 ‘조락’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채반’에 생선 말리는 장면도 빠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내륙지방 담양에서는 ‘채반’을 ‘납데기 바구니’라 부릅니다. 쟁반처럼 납작하여 그리 부르는 것이겠죠. 생김과 쓰임이 제각각이지만 이 모두가 물건을 담는 바구니의 사촌들입니다.
찬이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거름이 한 움큼씩 떨어져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소고리’를 들춰봤더니 촘촘해야 할 밑바닥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이 꼴을 본 삼촌은 지난 보리 파종 때가 생각난 듯, 금싸라기도 흘리는데 똥인들 못 흘리겠냐며 혀를 찬다.
작년 10월 보리 파종 때는 구멍 난 ‘종드래’가 문제였다. 밭두렁 여기저기에 흘린 보리씨를 주워 담느라 혼이 난 찬이였다. 시비를 끝내고 찬이네 식구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소나무 그늘에 둘러앉았다. 다시 시작된 삼촌의 잔소리는 찬이 귓등에 날아가 박히고, 시무룩해진 찬이 꼴에 웃음을 참다못한 밥알들이 튀어나와 ‘도담치’ 뚜껑에 날아가 박힌다.
사실 위와 같은 풍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거름 담는 ‘소고리’는 경북 예천, 씨앗 담는 ‘종드래’는 강원 홍천, 밥을 담는 ‘도담치’는 전남 고흥에서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 무언가를 담는 바구니들입니다.
“조선 숙종 때 문인 화가였던 공재 윤두서의 그림 중에 <나물 캐기>라는 그림이 있다. 비탈진 산자락에서 나물 캐는 두 여인을 그린 그림인데, 한 여인의 왼손에는 손잡이가 달린 조그마한 바구니가 들려 있다. 나물을 담는 바구니인 듯하다. 강원도 정선에서는 산나물을 캘 때 ‘다래끼’를 사용한다. ‘다래끼’는 짚으로 짠 바구니로 그 생김새가 공재 그림 속의 바구니와 흡사하다.”
(『한국의 바구니』 160쪽, 제주대학출판부 펴냄, 2000년)
바구니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선 팔도 어디든 바구니가 없던 곳은 없었습니다. 어촌, 농촌, 산촌 각지 각처에서 바구니는 백성들의 일손을 도왔고, 그 흔적은 바구니의 모양과 질감, 그리고 이름의 다양함 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만일 그 다양함이 어떤 단일한 하나를 품고 있다면 그것을 무어라 해야 할까요?
3. <감자 먹는 사람들>은 고흐의 초기 걸작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을 완성한 고흐는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라파르트가 이 그림을 보고 왜 그렇게 지저분한 빛깔을 사용하냐고 했지. 하지만 나는 더 어둡고 지저분한 빛깔로 그릴 것이다. 그 어두운 빛깔 속에도 얼마나 밝은 빛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림 속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램프엔 불이 켜져 있습니다. 힘겨운 노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농부의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 전체가 빛과 어둠의 강한 대비를 통해 묘사되어 있습니다. 고단한 삶에 잠시나마 찾아온 따뜻한 온기를 포착하기 위해 고흐는 거칠고, 아프고, 서러운 세계를 더욱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바구니가 품고 있는 세계는 어떤가요? 정지용의 시, <향수>의 묘사처럼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인가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인가요?
바구니의 주인은 새벽녘에 일어나 물을 긷고,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짓고, 밭으로 나가 곡식을 살피고, 소먹이와 땔감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다가 저녁 무렵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짜야 할 길쌈이 기다리는 그런 세계를 일구어 왔습니다.
정지용이 “차마 꿈엔들” 잊을 수 없던 그곳에 그녀가 서 있습니다. 거친 삶을 일구어 온 그녀의 손에 낡은 바구니가 있습니다. 낡은 바구니를 지탱해온 대오리 속에 그녀의 삶이 빛과 어둠으로 엮여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된 그녀의 삶과 만날 수 있을까요?
평생 굶어 속 빈 그 나무
죽어나지니
오라기 오라기 엮여
어느 겨를엔 떡을 먹고
어느 겨를엔 밥을 먹고
속 비는 새 없다더라
이 내 몸도 죽어나져야
전싕 팔자 고쳐나지카
오라기 오라기 엮여나지카
-한진오, <늙은 차롱>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도시입니다. 가난에서 해방됐지만, 풍요 속 빈곤과 싸워야 하고, 육체노동에서 해방됐지만, 감정노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이 도시는 각자도생의 전쟁터입니다.
대지를 떠나지 못하는 농부처럼 우리는 도시에 매어 삽니다. 농부가 대지를 거슬러 삶을 일구었듯 우리는 도시의 제도와 경쟁과 속도를 견디며 자신의 삶을 일구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위해,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를 향유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과거를 잊거나, 혹은 과거를 아름답게 포장하여 안전하게 봉인합니다.
하지만 거칠고, 아프고, 서러운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앙금으로 남습니다. 나의 격정이 봉인된 앙금과 만날 때 아름다움은 출렁입니다. 과거와 현재가 부딪히고 아픔과 불안이 껴안을 때, 봉인 풀린 아름다움은 나를 너와 삼고 우리를 세계와 맺습니다.
4. 혼인을 치른 신랑과 신부는 친정에서 한 달간 머물다가 시댁으로 돌아옵니다. 이를 경북 봉화군에서는 ‘태상’ 간다고 합니다. 혼인 3일째 신랑 측 어른들이 사돈집으로 인사를 갑니다. 이를 경주 용동리에서는 ‘신행’ 간다고 합니다. 혼인 전 신랑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단을 보냅니다. 울산 척과리에서는 이를 ‘봉채’ 간다고 합니다.(『東의 生活史』 275~278쪽, 제주대학출판부 펴냄, 2019년) ‘태상’, ‘신행’, ‘봉채’ 갈 때 떡과 예단을 사돈집에 선물합니다. 선물은 언제나 바구니에 담겨 전해졌습니다.
제주 사람들은 매년 정월 본향당(本鄕堂)에서 당신(堂神)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신과세제’를 올립니다. 사람들은 본향당에 모여 신전(神殿)에는 제물을 올려놓고, 신목(神木)에는 지전(종이돈)과 물색(삼색천)을 걸어놓습니다.
‘신과세제’뿐 아니라 마을의 큰 굿이 있을 때마다 할머니들은 새벽부터 본향당을 가득 채웁니다. 할머니들의 등에는 ‘고는대구덕’이 짊어져 있습니다. ‘고는대구덕’은 가늘게 쪼갠 대오리를 곱게 결어서 만든 바구니입니다. 귀한 제물을 담기에 제격인 바구니이지요.
사돈에게 떡과 예단을 선물하는 것, 신에게 제물을 봉헌하는 것, 모두 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도 마음을 전합니다. 선물을 통해, 안부를 통해, 눈빛을 통해, 두 손 모아 전하는 마음속엔 위로와 격려가 담겨 있습니다. 받은 마음이 주는 마음을 기억할 때 마음과 마음은 이어집니다.
우리는 그런 마음과 마음을 결어 바구니를 만들 수 있을까요? 사돈의 정성와 할머니의 치성으로 엮어내고, 고단한 그녀의 삶과 가난한 화가의 삶을 담아내고, 아픔과 불안을 위로와 격려로 품어낼 그런 바구니를 만들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인 것 같지만,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바구니를 하루하루 겯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하늘 아득하고 땅은 깊어
두 손 모아 치성드려도
하늘 아득하고 땅은 깊어
천년 폭낭 휜 가지에 하늘 걸고
만년 폭낭 우듬지에 땅을 길어
흰 술에 게알 안주
손금 자국 돌레떡 올려
빌고 빌고 또 빌고
막사발 벌르고
빈 구덕에 바람 담아 돌아오는 길
눈물이 말라야 정성이 닿을까
손금이 닳아야 치성이 닿을까
-김수열, <동행>
고승욱.
서귀포에서 태어났다. 제주에서 고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미술을 전공했다. 뜻한 바는 없었으나 솔잎을 먹다 보니 어느덧 미술에 업혀 살고 있다. 10년 전 고향 제주에 내려왔다. 제주는 너무나 뜻이 많은 곳이었다. 뜻의 미로를 헤매다가 제주민속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과 제주민속의 연결 고리를 찾느라 고민하고 있는 나는 벌써 중년이다. 뒤늦은 이 고민이 뒤늦은 도둑질이 되기를.. 업둥이는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