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구슬 열매. (사진=송기남)
멀구슬 열매. (사진=송기남)

먹쿠실낭, 먹구슬낭, 머쿠실낭 등은 멀구슬 나무의 제주말이다. 동의학에서는 고련목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맛이 쓰다는 뜻이다. 키는 10~20미터 가까이 자라는데 4월 하순부터 5월 사이에 자주색 꽃이 가지 끝에 원뿔 꽃차례로 뭉쳐서 흐드러지게 핀다.

꽃이 지면 작은 대추알 모양의 녹색의 열매가 달리는데 가을에 노랗게 익어 봄이 올 때까지도 나무에 매달린 것을 볼 수가 있다. 열매가 익으면 직박구리 같은 새들이 아주 좋아해서 겨울 양식으로 먹게 된다.

먹쿠실과 먹쿠슬은 먹구슬의 음가자가 변이된 발음이다. 제주어에서 보리밭은 그대로 ‘보리밧’ 이지만 조밭은 ‘조팟’으로 발음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먹구슬낭’이라 쓰고 읽는 소리는 ‘먹쿠실낭’으로도 읽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이 먹쿠실낭의 쓰임새는 아주 다양하다.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서 청년 시절에 심어놓고 중년 시절이면 자기가 심은 나무를 베어 가구를 만들어서 쓸 수가 있다. 예전에는 시골 동네마다 또는 마당 한켠에도 먹쿠실낭을 한그루쯤은 심어놓고 여름이면 그늘에 앉아 쉬거나 웃옷을 벗고 드러누워 낮잠을 즐기는 쉼터로서도 그만이었다. 

폭낭은 수명이 길어 1000년을 살지만 뿌리가 너무 멀리 뻗어나가서 집안으로 뿌리가 들면 집안이 망한다는 풍습에 의해 집 마당에 심지 않고 마을 한복판에 심는다. 이와 달리 먹쿠실낭은 속성으로 자라면서도 이파리에 벌레가 생기지 않고 뿌리가 적당히 뻗어서 좋다. 그래서 자기집 울타리 안이나 골목길 입구에 심어서 서너 집이 공동으로 쉼터를 삼았다. 

거의 집마다 심어놓고 그늘로 쓰다가 살찌면 베어서 가구를 만들었다. 늙은 먹쿠실낭의 속살을 베어 보면 밤색에 가까운 흑갈색으로 나무의 무늿결도 일품이다. 가구 재료로 약간의 흠이라면 속살이 조금 거친 듯하지만 요즘은 성능 좋은 전기 기계로 깎아서 래커를 칠하면 매끄러워진다.

돈 있는 부잣집 양반들이야 딸자식 시집보낼 때 굴무기낭 가구나 산벗나무 가구를 해줄 수 있었지만 빠듯하게 살아가는 가난한 서민들은 딸 키워 시집보낼 때 해줄 수 있는 만만한 나무가 먹쿠실낭이었다.

먹쿠실낭에는 거의 웬만한 벌레는 접근을 하지 않는다. 나무에 벌레를 퇴치하는 독성 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 더위에 먹쿠실낭 아래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윗도리를 벗은 채로 낮잠을 즐길 수가 있는 이유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어른이나 아이할 것 없이 자기집 안방에서 자듯이 벗고 자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멀구슬 열매. (사진=송기남)
멀구슬 꽃. (사진=송기남)

먹쿠실낭은 여름철 그늘 자리와 시집가는 딸에게 주는 가구 재료 외에도 쓰임새가 있다. 

봄에 꽃을 따서 말렸다가 약재로 쓴다. 꽃에는 플라보노이드를 비롯한 여러 물질이 들어 있다. 땀띠를 치료할 때 꽃을 이용해 몸을 씻어준다. 가을에 익은 열매는 따서 말렸다가 회충이 있어서 배가 아플 때 구충제로 쓴다. 

구충제로 쓸 때는 물 4홉에 말린 열매 15~20그램을 넣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줄여서 물이 2홉으로 줄 때까지 달여 하루 두 번에 나누어 마신다. 독성이 있으므로 감초를 약간 넣어서 쓴다.

특히 구충제로 쓸 때는 아침 먹기 1시간 전에 먹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공복에 먹는다. 독성이 있으므로 한의사나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좋다. 대추씨알 같은 열매의 씨앗은 깨끗이 씻어서 실에 꿰어 염주나 냄비 받침을 만들 수도 있다. 목질 성분인 열매 씨앗에 여러가지 색깔을 입히면 멋진 팔찌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부터 쿠바를 살린 나무이기도 하다. 쿠바는 중앙아메리카의 카리브해에 위치한 섬나라다. 쿠바는 1953년 7월 26일부터 1959년 1월 1일까지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가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자주독립 혁명의 행군을 감행하게 된다.

같은 시기 볼리비아 태생의 젊고 걸출한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의 혁명을 도와 친미정권을 완전히 몰아내고 쿠바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선포했다. 5년 5개월 간 미국의 지원을 받는 친미 독재정권을 종식시키며 미국의 높은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준 쿠바 민중의 완승이었다.

잔뜩 약이 오른 미국은 쿠바를 향한 깡패노릇을 멈추지 않는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 초프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카리브해에 미사일 배치를 계획했고 미국의 존 케네디 대통령은 카리브 해상 봉쇄령으로 압박한다. 일촉즉발의 순간을 넘기게 되었지만 여전히 미국은 쿠바로
들어가는 물자들을 차단하게 된다. 

척박한 땅 쿠바는 미국으로부터 농산물을 수입에 의존해오다가 경제 제재로 굶어 죽을 상황에 내몰린다. 그러나 쿠바는 미국에 굴복하지 않았다. 쿠바는 스스로 살아갈 자립 갱생의 길을 걷는다. 국가 기능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한다. 지금 미국이 한반도이북을 제재하는 것과 똑같이 했던 것이다.

버려진 땅에서 농사는 쉽게 되지 않았다. 땅을 살리는 미생물 번식 기술을 연구하게 된다. 미생물로 살려낸 땅을 지속적으로 살리기 위해 화학 약품이나 화학 비료를 대신할 친환경 살충제를 개발한다.

이파리나 열매에 벌레가 먹지 않는 멀구슬 나무를 연구한 것이다. 그렇게 고난의 시절을 극복한 쿠바는 황무지의 나라를 농업국으로 살려냈다. 쿠바는 지금 세계 최고의 친환경 모범국가로 일어섰다. 이미 50년 전 미국에 맞서서 성공한 쿠바에 우리나라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5000년 농업국인 우리는 무엇을 하였는가? 화학농약, 화학비료 쌀수입은 물론이고 소, 돼지, 말 사료는 물론이고 개 사료까지도 미국에서 수입을 해오고 있지 않은가? 먹쿠실낭, 이제 우리도 생태계의 순환 자원으로서 농업과 의술에서 연구해보면 어떨까.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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