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낭은 장미목 보리수나무과 보리수나무를 가리키는 제주말이다. 제주에서는 모든 보리수 종류를 볼레낭이라 하는데 그중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보리수 중에 열매가 팥알같이 잘고 가을에 익는 보리수를 팥볼레라 한다.
팥볼레는 가지에 가시가 듬성듬성 있고 5~6월에 꽃이 피어 열매가 익는 시기는 한국 중부지방 쪽은 9~10월, 제주에서는 10월 하순부터 12월 초순까지이다. 열매는 붉은색으로 익으며 익기 전에 열매는 떫고 쓴맛이나 잘 익을수록 단맛이 있고 늦가을 서리맞은 열매는 맛이 더 달다. 열매에는 1개의 쌀알만 한 씨앗이 들어있다.
옛날에 간식거리가 부족해 배고픈 아이들은 볼레가 익어가면 들로 산으로 나가 볼레나무를 찾아 돌아다녔다. 아침밥만 먹고 산과 들로 볼레를 찾아다니다 보면 배고픔은 더해지게 된다. 처음 발견한 나무에 열매들은 나뭇가지를 붙잡아 입에다 대고 들짐승처럼 정신없이 먹어댄다.
이때는 배가 고파 씨앗까지 모조리 씹어서 삼키게 된다.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더 맛있게 익은 열매가 없는가 살피면서 나무마다 돌아다니며 맛보기를 한다. 목구멍에서 트림이 나오도록 열매를 실컷 먹고 나면 아이들은 맛이 달면 따고 맛이 별로다 싶으면 다른 나무로 계속 옮기면서 열매를 딴다.
주전자를 들고 다니면서 따는 아이들도 있고 쓰고 다니던 모자를 벗어 따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잔가지를 꺾어서 칡넝쿨로 묶어 나무 막대기에 걸고 어깨에 걸쳐 들고 집으로 오던 기억이 있다.
1948년 제주에서 4·3 발발로 토벌 군인과 경찰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부족한 식량으로 아사 직전 새들처럼 볼레 한 줌이라도 따먹었기에 목숨이 살았다는 증언들도 나온다.
볼레는 모든 새들이 초겨울을 견디게 했던 새들의 식량이기도 하다. 옛날에 시골 아이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 때쯤 올가미를 놓아 꿩을 사냥했었다. 고기를 먹어보는 게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꿩고기는 제사음식에 쓰는 고기였다.
꿩잡는 올무를 제주사람들은 ‘꿩코’라 하는데 버려진 전깃줄을 불로 태우면 실처럼 가느다란 구리선이 나오는데 이것을 두 겹이나 세 겹으로 꼬아 올무를 만들어 볼레낭 아래다가 걸어놓는다.
꿩들이 먹을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걸려 죽은 것을 가져와 내장을 손질하다 보면 모이주머니에 볼레씨앗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원시사회로부터 20세기 중후반까지도 사람과 산짐승이 공동 먹거리였던 볼레낭은 예전에는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장작숯을 구워다 팔아 생계를 꾸려가던 옛날 산촌 사람들에게 볼레낭은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장작 숯의 품질은 상수리나무가 최상품이지만 제주에는 상수리나무가 없어서 졸참나무를 베어서 쓰거나 졸참나무와 함께 볼레낭은 아주 질 좋은 숯의 재료로 쓰였다.
숯의 품질은 나무의 품질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좋은 숯이 나오는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야만 숯값을 제대로 받을 수가 있다. 산에 숯막을 지어놓고 나무를 베어 숯을 구워 볏짚 가마니에 담아지고 험한 산길 걸어서 장날에 팔러가야 한다.
좋은 가격을 못 받으면 노동력이 헛수고가 된다. 숯가마에 불을 지르고 날밤을 새워가며 장만한 숯을 노련한 숯장시들은 막대기로 딱딱 두드려 본다. 쩡쩡 쇳소리가 날 정도면 합격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숯은 대장간에서 쇠를 녹이고 농기구 등 연장을 만드는 데 쓰인다. 연탄이 귀했던 제주의 식당에서는 음식을 조리하는 데도 숯불을 이용했다. 특히 옛날 다방에서는 연탄 대용으로 숯불을 항상 피워두고 물주전자를 데우면서 손님이 들어와 주문하면 커피를 바로 내올 수가 있었다고 한다.
동의학에서도 볼레낭 열매는 소 ‘우’자 우 ‘내’자를 써서 잎은 우내엽, 뿌리는 우내근이라 하여 약재로 쓴다. 청열 작용을 하며 이질이나 임질에도 좋다. 물 4홉에 말린 열매나 뿌리 또는 잎을 40그램을 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달여 하루 2회 음용한다. 약간 서늘한 성질이긴 하나 독이 없는 약재다.
볼레낭은 제주의 해안선부터 한라산 중허리 위에까지 초원이나 숲 가장자리에 매우 흔하디흔한 나무지만 지금 골프장 건설과 개발로 많이 사라지고 있는 나무다. 가시덤불 취급으로 천대받아 왔지만 제주도민의 생활사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나무다.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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