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꽃 향유. (사진=송기남)
붉은꽃 향유. (사진=송기남)

노리자리라 하면 꿀풀과의 1년생 야생초 꽃향유와 좀향유를 이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노리는 노루를 가리키는 제주방언이며 노루가 노닐거나 푹신하게 깔고 앉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제주도 내 해발 200~700고지 오름이나 자연 목초지의 키 작은 풀밭에서 자주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이삭꽃차례로 흐드러지게 핀다.

온 들판에 깊어가는 가을하늘 아래 눈부시도록 꽃방석을 깔아놓고 꿀벌의 노래 신나게 붕붕거리면 양봉농가에서는 양지바른 들판에 벌통들을 줄지어놓고 꿀 수확을 기다린다. 노리자리 꿀은 제주도에서 나오는 모든 야생화 꿀 중에도 최고급 꿀 3대 명품 중 하나였다.

특히 가을 야생화 꿀 중에는 노리자리꿀과 견줄 꿀이 없는 최상품꿀이다. 들판에 무리 지어 화사하게 피는 노리자리 꽃은 그 빛깔도 곱거니와 꽃술에 달코롬한 꿀물이 가득 든 채로 꽃이 오래도록 피어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가을을 누리게 된다. 

하얀꽃 향유. (사진=송기남)
하얀꽃 향유. (사진=송기남)

제아무리 배곯던 흉년에라도 노리자리 고장 피어 들판을 화사하게 수놓으면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옛날에 어른들이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눈이 선한 사람은 가슴도 선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꽃에 눈길이 선한 사람은 사람을 대함에도 선한 사람이라 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 우리 들판에서 이렇게 아름답던 노리자리가 종적을 감추고 있는 것일까? 제주도 중산간에 산록도로와 골프장이 들어서기 전 나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1990년대까지도 가을 이맘때면 소와 말들이 풀을 뜯던 목장과 오름에는 노리자리 꽃이 땅바닥을 화사하게 덮고 있었다.

중문 산5번지 녹하지 오롬 아래도 그랬고 거린사슴 아래도 하원목장에도 골레기오롬 근처 모록밭 목장에도 광평리 대비오롬에도 안덕면 동광리 원물오롬에도 당오롬과 정물오롬에도 그 자주색 빛깔이 찬란했던 곳이다. 백약이오롬, 동검은이오롬, 용눈이오롬에도 그렇게 많았던 들꽃들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들꽃들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과정들은 제주에 목초지를 갈아엎고 농경작을 하면서 사라져갔고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져갔다. 그 옛날처럼 지금도 제주 들판에 노리자리꽃이 흐드러졌다면 제주에서 최고급 양봉꿀이 생산되고 있을 것이다. 노리자리꽃 관광은 억새꽃 관광과 함께 덤으로 보는 이들을 기쁘게 맞이했을 것이다.

외국에서 수입해온 핑크뮬리같은 종류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아름다운 야생화이며 밀원식물 자원이다. 노리자리꽃 꿀은 감귤꽃 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품질과 가격에도 월등히 차이가 나는 고급 상품이기 때문이다.

붉은꽃 향유. (사진=송기남)
붉은꽃 향유. (사진=송기남)

나의 청년시절 친척 어른께서 양봉업을 하셨고 들판에 벌통을 놓아 노리자리꿀을 채밀할 때면

일손을 거들며 얻어먹었던 그 꿀맛은 아직도 못잊는다. 지금 시중에 마트에 진열해 팔고 있는 잡화꿀이라고 하는 맛과 향 품질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노리자리꽃은 이렇게 최상품의 벌꿀을 채취하는 밀원식물 자원으로서도 가치가 높고 야생화로서도 아름다운 경관자원이다. 뿐만 아니라 노리자리는 동의학에서도 질병을 치료하는 데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동의 민간의학에서는 향유라 하여 약재로 쓰인다.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맵다. 위장을 편안하게 하고 폐를 다스리며 두통, 복통, 설사에 약으로 쓴다. 꽃이 채 피기 전에 전초를 잘라 말린다. 마른 약재를 물 1리터에 8~10그램을 넣고 물이 3분의 1로 줄 때까지 달인다. 하루 세 번 나누어 음용한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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