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 (사진=송기남)
칡. (사진=송기남)

덩굴성목본 콩과식물인 칡은 잎이 지는 다년생 식물이다. 칡을 제주에서는 ‘끍’ 또는 ‘끍 줄’, ‘끍넌출’ 등으로 불리운다. 끍은 끈에서 변이된 듯하며 넌출은 넝쿨을 뜻하는 말이다.

칡은 거의 토양을 가리지 않으나 부엽토가 쌓인 비옥한 땅에서는 생장 속도가 매우 빨라서 봄부터 가을까지 땅바닥을 기어가며 거침없이 뿌리내리고 자란다. 꽃은 8~9월에 붉은 자색으로 피는데 총상화서이다.

나무를 감고 오르는 칡은 세월이 흐르면서 팽팽히 당겨지면서 칡에 감긴 나무는 점점 조여들어 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세월이 가면서 칡의 섬유질이 점점 질겨지기 때문에 다른 나무들이 칡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이다.

이렇게 질기고 질긴 칡을 이용한 시골에 생활 도구는 상동나무를 테두리로 삼아 삼태기를 만들어 썼던 것이다. 제주에서 골체라고 하는 삼태기는 가제트 형사 모자를 뒤집어놓은 듯 한쪽은 통이 깊고 한쪽은 얕아지게 만든 생활도구로서 흙이나 자갈등 농작물을 밭에서 담아 나르는 데 썼던 것이다. 

칡이나 으름넝쿨로 만든 골체는 1980년대까지도 시골 오일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철재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골체들이 나오면서 민속 박물관이 아니면 자취를 감춰버린 물건이다. 거의 20세기 후반까지도 이것을 손기술로 만들어서 팔던 기능 보유인들이 있었다. 직업과 기능과 문화가 공장 물건에 밀려서 사라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칡 꽃. (사진=송기남)
칡 꽃. (사진=송기남)

동의학에서 덩이 뿌리줄기를 ‘갈근’이라 하고 꽃을 ‘갈화’라 한다. 굵은 덩이뿌리에는 녹말질이 들어있고 쓴맛과 단맛이 들어있어서 오랫동안 씹어 즙을 빨면 처음에는 강한 쓴맛도 나중에는 단맛이 난다.

갈근은 일제시대에도 동만주에서 조선의 독립군들이 소나무 속껍질과 함께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여 초근목피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구휼 식량이기도 하다. 칡은 우리 민족에게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식물이다. 칡은 지병의 고통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키고 흉년에 주린 배를 채워 목숨을 구해주던 질기고 질긴 생명의 식물이다.

칡은 뿌리부터 줄기, 이파리, 꽃 모두가 버릴 것이 없는 자원식물이다. 암칡이라고 하는 어른 종아리 굵기 정도의 오래된 칡뿌리는 이른 봄과 늦가을에 캐어 즙을 내 먹거나 갈근탕을 달여서 먹는다. 

혈압을 내려주고 당뇨로 인한 갈증에도 좋다. 협심증을 다스리고 비와 위를 살린다. 몸 안에 독을 풀어준다. 여성들에게는 갱년기를 늦추게 한다. 꽃은 갈화이며 8월 꽃이 하나둘씩 피려고 할 때 어린 꽃이삭은 따서 덖어 말리고 밀폐용기에 보관한다. 

말린 갈화 20g을 물 4홉에 끓여 물이 반으로 줄면 하루 두 번 공복에 마신다. 숙취 해소를 돕고 속을 편안하게 한다. 끓일 때는 양은냄비나 양은 주전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납 성분에는 산화작용으로 인해 독이 된다. 무거운 스텐이나 뚝배기 용기를 사용해야 한다.

물은 가공되지 않은 물을 써야하는데 산속에 흐르는 약수가 좋고 없으면 차라리 수돗물을 쓰는 게 낫다.

봄부터 여름까지 어랑지게 나오는 어린잎은 콩잎 대신에 쌈 싸 먹기에도 아주 맛있다. 섬유질이 많고 콩잎 향내가 나는 콩과식물 칡잎으로 보리밥에 쌈장이나 멸젓 국물 얹어서 싸 먹으면 정말 농약 안친 콩잎 맛이 입안에 오래도록 감돈다.

옛날 제주인들만 먹던 콩잎은 요즘 건강 채소로 인기가 많아지면서 차츰 전국에 음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한여름철 생채로만 쌈 싸 먹던 콩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일 년 내내 먹거나 기름진 고기만 먹고 변비가 오는 분들에게는 섬유소가 충분히 들어있는 콩잎은 이상적인 음식 궁합이다.

그러나 콩잎은 꽃이 피기 시작하는 8월 초가 되면 콩을 수확하기 위해 농약 살충제를 두 번정도 치게 된다. 벌레 먹은 콩이라도 각오하고 무농약 친환경 재배한 콩잎이 아니면 팔월의 콩잎은 살충제와 함께 우리 몸으로 들어가게 된다.

바로 콩잎 신에 어랑 어랑진 칡잎을 뜯어다가 쌈 싸 먹거나 산야채 비빔밥으로 먹어도 임금님 밥상이 부러울 게 없다. 이것을 콩잎처럼 장아찌를 담아놓고 계절이 바뀌어 그 맛이 그리울 때 한 번씩 먹어보는 것도 좋겠다.

칡의 자원 가치는 약초로서뿐만 아니라 염료로서의 가치도 상당히 중요하다. 갈중이 갈옷은 칡 갈 이다. 칡잎과 줄기에서 나온 즙을 광목천에 물들이면 칡갈 갈색으로 변한다. 여기에 동이나 철을 매염재로 사용한다.

칡꽃의 꽃말은 사랑의 한숨, 등꽃의 꽃말은 사랑의 취함.

자연계의 칡과 등나무처럼 우리는 살기 위해 삶으로 가는 길에 사랑과 한숨이 있음에도 서로 증오하지 않을 만치에서 또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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