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나무와 열매. (사진=송기남)
황칠나무와 열매. (사진=송기남)

황칠낭은 두릅나무과 상록 활엽교목 황칠나무의 제주말이다. 황칠나무는 지구상에서도 한국의 특산식물이며 그중에도 제주도가 주산지로 자생하는 식물이다. 황칠나무는 겨울이 따뜻하고 공기습도가 높은 계곡 주변이나 촉촉한 부엽토가 쌓인 상록수림 지대에 섞여서 자생한다.

황칠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따뜻한 서귀포 지역에선 해발 700고지 밑까지도 자생하지만 한라산 북쪽으로는 해발 500고지 아래 계곡이나 곶자왈 상록수림 지대에 자생한다. 언제부턴가 황칠나무는 남해안 지방까지 옮겨 재배되고 있다.

자연적인 서식지에서의 황칠나무는 상록수다. 이런 상록수가 겨울에 낙엽이 지는 곳이라면 나무가 죽지는 않더라도 그곳은 주산지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어떤 식물도감들에서 보면 황칠나무는 제주도에서는 상록수이지만 잎지는 나무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황칠나무가 육지로 반출되는 시기가 상당히 오래 되었으므로 남해안 지방에서의 기록이 1000년 전이나 최소 600년 전에 자생했다는 기록이 없다면 그 원산지는 모두 제주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 나름 유추해본다. 최소 600년 전을 기준 삼는 것은 원나라가 패하고 명나라가 강해지던 시기로서 고려말기부터 조선초기는 이때가 대량으로 조공을 바치던 시기임을 감안해서다.

이 시기에 제주 도민들은 황칠을 채집해 오라는 조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고 살가죽이 벗겨지도록 산속을 누비면서 공출에 시달려야만 했다. 제주도민이 공출에 동원될 때면 농사일도, 가족이 먹을 식량을 구하는 일도 모두 손놓고 노예처럼 시키는 일만 하고 복종해야 했다. 

황칠나무와 열매. (사진=송기남)
황칠나무와 열매. (사진=송기남)

도대체 황칠나무가 뭐기에 이렇게 제주도민들을 괴롭히면서 산속을 누비며 채집해오도록 조정에서 명했을까? 황칠나무의 껍질의 상처나 베어진 그루에는 황금색의 수액이 찐득하게 흘러나온다. 이것을 가지고 왕실의 가구에 칠하거나 관복을 입고 허리에 두르는 각반에 칠하면 황금빛으로 찬란한 천연 도료로 쓰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설에는 명나라의 아방궁의 기와 지붕을 제주에서 공출로 거둬들인 황칠을 조공으로 바쳐서 칠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니 제주도민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그 고된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을까.

날이면 날마다 노역에 시달려온 제주 도민들은 살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한라산 계곡에서 자라는 황칠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리는 작업을 해야 했다. 산에 자생하는 황칠나무를 멸종시켜야만 강제노역에 동원되지 않고 평온하게 농사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도민들은 관원들 몰래 자생지의 황칠나무들을 베어 없애버렸다. 그래서 황칠나무는 제주에서 거의 씨가 마르는 단계에 이르렀었다. 그리고 공출은 멈추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험준한 바위틈에 살아남은 몇 그루의 황칠나무들이 씨앗을 퍼뜨리며 다시 숲에 돌아왔다.

지난 2004년경 육지에서 묘목 장사꾼들이 제주 지역 일간신문에 광고를 내어 황칠나무 묘종을 비싼 가격으로 홍보하였다. 분양받은 농가에는 전량 책임지고 수매한다는 광고였다. 그 분양받은 농가들이 그 묘목 장사꾼들의 약속대로 책임수매를 하여 농가에 도움을 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의학에서는 ‘황칠’이라 하여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달다. 지방간을 다스리고 혈액순환 개선과 면역력 증진에 쓰인다. 위장병과 항암치료에도 쓰인다. 옛날 구전으로 전해오는 어른들 이야기에는 무정자증 남자가 먹으면 정자가 생긴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구전으로 들었던 이야기 이므로 단정해서 말할 수는 없다. 황칠나무는 속열이 있는 사람과 임산부는 피해야 한다.

송기남.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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