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희씨는 어릴 때부터 알아주는 다독왕이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면 서점에 갔다. 문고판은 어린 세희씨가 사기에 크기도 가격도 적당했다. 책을 직접 사서 소유하거나 빌려 읽는 일이 일찍이 몸에 뱄다. 책의 어떤 점이 그렇게도 좋았을까?
“활자들이 한정된 장소에 있는 제가 경험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해 줬어요. 나를 조금 더 성장시켜주고 넓혀 주는 그런 부분들이 좋았어요.”
책이 주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나는 경험 못지않게 서점에서의 추억도 특별했다. 긴 사다리를 타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책을 꺼내 보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책을 꺼내 보기도 했다. 서점엔 늘 새로운 책이 입고됐고 세희씨가 읽어야 할 책, 읽고 싶은 책이 가득했다. 책은 세희씨에게 짜릿하고 기대되는 설렘의 대상이었고 서점 또한 그랬다.
책방 <어떤 바람>은 몇 가지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아이들과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을 것,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서 시골 마을에 문화예술을 체험할 기회를 자주 만들 것.
마을에 있는 책방이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시작했다. 마을 책방이 세희씨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 만큼 그 기쁨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란 것이다. 이 바람은 세희씨만의 바람이 아니었다.
'드르륵-.' 오픈하고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저 멀리서부터 책방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한 어르신이 다가왔다. 문을 연 어르신은 뭐하는 곳이냐고 물으셨다. 어르신은 이곳이 마을내 유일한 슈퍼마켓이던 시절과 그곳이 문을 닫았던 일을 모두 경험한 분이셨다. 이곳이 앞으로는 다르게 사용될 것이 궁금하기도 하셨을테고 섭섭하기도 하셨을 것이다. ‘책방’이라는 말에 어르신이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이제 사계리는 책방이 있는 마을이라며 어깨춤이 날 만큼 좋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셨다. 세희씨 부부의 선택이 주민들의 응원을 받는 순간이었다. 이후 할아버지는 마을에 입소문을 내셨는지 이전까지는 책방에 크게 관심 가지 않았던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드로잉 수업이었다. 마을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주민들은 나고 자란 곳의 매력을 더욱 깊게 체험했고, 그 애정이 담긴 작품들은 굿즈 제작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일부 주민은 그림을 계속 그리며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하고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중요했다. 바다와 산 등 빼어난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사계리가 오래도록 가꿔나가야 할 것 역시 자연이다. 그래서 아이들과 환경 프로그램을 종종 운영했다. 글을 지었고,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는 팜플랫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놀이였다. 책방 내 2층 작은 갤러리에서는 그림책 원화전과 사진책 원화전을 꾸준히 열린다. 몇몇 프로그램은 초등학교와 연계해 진행됐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비해 아이들이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매우 적은데 책방 <어떤 바람>이 그 갈증을 달래주고 있다.
사계리 인근엔 이주민이 많은 편이다. 이분들과도 종종 시간을 갖는데 이 분들이 특히 좋아하는 주제는 제주신화와 당문화다. 오랜 시간 걸쳐 축적된 제주 고유 문화와 정신을 배우는 이 기획은 호응이 뜨거워서 몇 차례 연장을 해야 했다고.
난민, 이주민, 소수자, 노약자, 동물, 환경 등을 주제로 한 책 모임은 제주 곳곳에서 일부러 참여하는 등 인기다. 이곳은 특별하게 남성들의 책 모임이 별도로 있다. 용관씨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이다. '과연 누가 올까?; 싶었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의외로 모임을 원하셨던 분들이 꽤 됐다. 좋은 책을 서로 나눠 읽고 이야기를 풀어내며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꽃에 바람이 불면 꽃바람이 된다는데 세희씨 부부가 사계리에 부는 바람은 공감과 성장, 치유다. 책을 매개로 연대하고 그렇게 함께 나아가길 꿈꾼다.
세희씨는 책방 문을 열고 2~3년은 책방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응원과 지지를 해 준 분들이 있어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고. 그분들이 전해 준 선한 바람이 이 책방에 머물러 있다. 함께 사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곳, 책방 <어떤 바람>이다.
#. 시인 할머니의 욕심 없는 삶 / 황보출 글, 그림
“내 인상에 이 시간 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네.” -책 <시인 할머니의 욕심 없는 삶> 중
1933년 포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사셨던 할머니는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다가 2012년 2월 초등학력 인정 졸업장을 받았다. 막내딸의 권유로 한글 공부를 하지 못한 여성들을 위한 문해교육학교 ‘푸른어머니학교’를 졸업하게 됐다. 이후 할머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빠짐없이 일기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16년 첫 시집 <「가」자 뒷다리>를 펴냈고, 2020년 <시인 할머니의 욕심 없는 삶>을 펴냈다. 당시 나이 88세.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그는 지난해 말 <인생에 늦은 때란 없으니까>라는 신간을 발표했다.
추천책 <시인 할머니의 욕심 없는 삶>은 <시인 할머니의 거짓 없는 자연>, <시인 할머니의 귀여운 하루하루>,<시인 할머니의 두근두근 사랑>과 함께 나온 독립출판서적이다.
김세희 책방지기는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살아낸 한 여인이자 간결하면서 깊은 울림을 전하는 시인으로서 황보출 할머니를 존경한다며 이 책을 권했다.
※ 책방 어떤 바람은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로 374에 있어요.
일요일과 월요일은 쉬고요.
화요일부터 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어요.
운이 좋으면 영업부장 산방군을 볼 수도 있어요!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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