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제주웰컴센터에서 대중교통정책 발전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10일 제주웰컴센터에서 대중교통정책 발전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대중교통 발전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오영훈 제주지사가 인사말에서 현재 추진 중인 간선급행버스와 섬식 정류장 두고 '대중교통의 혁신'이라며 자찬했다. 하지만 이어진 발표를 들여다보면 휠체어 및 유아차 이용자, 고령자 등 교통약자를 위한 혁신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날 섬식 정류장에 대한 다양한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제주도가 도민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일단 공사를 추진해버린 상황으로 인해 분통을 터트린 도민도 여럿이었다.

제주도는 서둘러 간선급행버스 체계를 도입하려 하고 있다. 간선급행버스는 시와 읍면 지역 거점을 연결하는 버스이다. 제주도는 관련 용역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도민 의견 수렴 과정도 빼놓은 채 서둘러 섬식 정류장을 공사를 시작했다. 제주투데이 취재 결과 제주도는 관련 용역 과업 지시에 도민 설명회나 의견 수렴 과정을 의무화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도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추진된 섬식 정류장 설계는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이용자, 고령자 등 교통약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됐다. 제주도는 교통약자의 의견을 듣는 자리조차 마련한 바 없었다.

현재 제주 지역 버스 정류장에서 휠체어 및 유아차를 이용해 저상버스에 승하차하기 쉽지 않다. 교통약자의 편의를 위해 저상버스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저상버스의 출입구가 버스 승차대보다 높아 단차가 있기 때문이다. 저상버스에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하고 있지만 경사 때문에 휠체어나 유아차 이용자가 버스를 타고내리는 데 불편이 따른다.

문제 해결 방법은 없을까? 있다. 제주도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도입한 저상버스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류장을 설계하면 된다. 버스 정류장 바닥의 높이를 저상버스 출입구 높이에 맞춰 단차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승차장과 버스 사이에 계단이나 경사 없이 수평한 상태가 되면 휠체어와 유아차 이용이 용이해진다. 고령자 든 누구든 버스에 타고 내릴 때 편리하다. 수트케이스를 끄는 관광객 역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근로자가 장애인 이용자 이지혁씨의 저상버스 탑승을 위해 휠체어를 힘껏 밀며 버스로 오르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대중교통의 혁신' 운운 한 섬식 정류장도 이처럼 버스 사이 높이 차이를 두도록 설계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혁신은 없었다.2022.4.19.(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근로자가 장애인 이용자 이지혁씨의 저상버스 탑승을 위해 휠체어를 힘껏 밀며 버스로 오르고 있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대중교통의 혁신' 운운 한 섬식 정류장도 이처럼 버스 사이 높이 차이를 두도록 설계했다. 교통약자를 위한 혁신은 없었다.2022.4.19.(사진=박지희 기자)

버스 승차장 바닥 높이를 버스 출입구 바닥 높이에 맞춰 교통약자의 버스 이용 편의성을 높인 브라질 꾸리지바 시의 사례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유니버설 디자인 및 배리어프리를 지향하는 도시공간 설계의 기본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제주도는 기껏 도입한 저상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 도입하겠다면서 이미 공사를 시작한 섬식 정류장도 개선된 설계를 적용하지 않았다.

버스 출입구 바닥과 수평한 승차장 설계는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확보하는 정책인 동시에, 육아 중인 부모가 유아차를 끌고 도시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저출산 정책도 된다. 수트케이스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관광객을 위한 정책도 될 수 있다. 모두가 편한 유니버설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그와 같은 설계를 내팽개쳤다.

용역을 맡아 진행 중인 도화엔지니어링은 정류장 승차대 높이를 25cm로 설계했다. 현재 도내 버스 정류장 높이와 차이가 없다.(사진=김재훈 기자)
용역을 맡아 진행 중인 도화엔지니어링은 정류장 승차대 높이를 25cm로 설계했다. 현재 도내 버스 정류장 높이와 차이가 없다.(사진=김재훈 기자)

정류장을 설계한 도화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섬식 버스 정류장 승차장 바닥의 높이를 25cm로 설계했다고 밝혔다. 휠체어 및 유아차 이용자가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현재 버스 정류장의 높이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버스 이용의 불편을 개선하지 않고,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을 어떻게 높이겠다는 것일까. 제주도가 향후 대중교통의 핵심 축으로 내세우고 있는 간선급행버스지만, 교통약자들은 현행 버스 시스템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정류장 설계로 인한 불편을 고스란히 겪을 수밖에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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