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양문형 버스 및 섬식정류장을 근간으로 하는 간선급행버스(BRT) 시스템이 새로운 대중교통 모델로 주목받고 있지만, 추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런 가운데 파주시·창원시·서울시·대전시 대중교통과 및 교통정책과 관계자들이 제주를 잇달아 방문할 예정이다. 제주도가 시기적으로 앞서 추진해 나가는 부분에 대한 답사를 위해서다. 각 지자체 공무원들은 제주도가 섬식정류장 도입 과정에서 보여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제주도를 따라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정리했다.

#설계 시 교통약자 당사자 의견 수렴하지 않고 논란 자초하기

제주도는 새로운 대중교통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주민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사업을 급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공사가 마무리된 후에야 의견을 수렴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사전에 충분한 의견 수렴과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업이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주민들의 신뢰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인 소통과 의견 반영이 필요하다.

제주도는 섬식정류장을 설계하면서 장애인 단체와 시민사회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시각장애인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점자블록의 부적절한 설치, 보행로 중앙에 식재된 나무로 인한 사고 위험성, 휠체어 이용자는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없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 셈이다.

#규모와 디자인 내세우며 보행 불편 및 안전 위협 초래하기

제주투데이는 실내 대기실의 점자블록으로부터 90cm 내에 고정시설물을 설치된 문제를 지적했다. 점자블록 90cm 내에 고정시설물을 설치하면 안 된다. 현재 고정의자는 제거됐을까? 반대다. 제주도는 오히려 실내의 점자블록을 모두 제거했다. 블록으로 깔아뒀던 실내 정류장 바닥을 철거하고 에폭시로 바닥을 아예 새로 시공했다. 물론 에폭시 바닥에도 새로 점자블록 설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제주도는 아직 점자블록을 설치하지 않고 있다.

지난 17일 제주투데이는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탐라장애인종합지관 인근 섬식정류장의 문제를 살펴봤다.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편의시설, 안전 문제 등이 부각됐다. 당시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다.(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17일 제주투데이는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탐라장애인종합지관 인근 섬식정류장의 문제를 살펴봤다.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없는 편의시설, 안전 문제 등이 부각됐다. 당시에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다.(사진=김재훈 기자)
21일 확인한 섬식정류장의 실내 대기실 바닥에는 점자블록이 철거돼 있었다.(사진=김재훈 기자)
21일 확인한 섬식정류장의 실내 대기실 바닥은 점자블록을 철거하고 에폭시로 마감된 상태였다.(사진=김재훈 기자)

점자블록이 혼란스럽게 설치되면 시각장애인은 이동 방향을 파악하기 힘들다. 섬식정류장이 바로 대표적인 예다. 특히, 제주도는 섬식정류장 이동 경로 정중앙에 나무를 식재했다. 디자인을 위해 보행 경로 정중앙에 설치한 것이다. 이는 장애인은 물론 모든 보행자의 안전 문제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중앙의 나무를 비껴 양 갈래로 이동해야 한다. 사람이 몰리면 자칫 차도로 떨어질 위험까지 초래하고 있다.

 또한, 휠체어 이용자들은 경사가 심한 보행로와 고정된 의자 때문에 불편을 겪게 됐다. 이러한 문제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교통약자의 안전과 편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장애인의 이동 편의를 고려하는 시설 개선은 가장 나중으로 미룰 모양이다.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정류장이지만, 장애인 이동 편의에 대한 고려는 이처럼 형편없는 수준이다.

제주도가 섬식정류장 중앙에 식재한 나무. 이동 경로 한 복판에 나무를 식재해 불편을 초래하는 상황이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도가 섬식정류장 중앙에 식재한 나무. 이동 경로 한 복판에 나무를 식재해 불편을 초래하는 상황이다.(사진=김재훈 기자)

#보여주기식 전시 행정으로 예산 낭비하기

제주도는 섬식정류장의 심미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앙에 나무를 식재했다. 실내 정류장에는 바닥에 고정된 의자와 테이블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교통약자들의 편의와 안전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휠체어를 이용해 이용할 수 있는 테이블은 없다. 시각장애인들은 중앙의 나무로 인해 보행에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정류장 지붕 위에 설치된 6KW급 태양광 발전 시설은 남측의 8층 건물로 인해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해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는 주변 건물의 높이와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설계한 것으로, 예산 낭비와 전시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사전에 충분한 현장 실사와 기술 검증을 통해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제주도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체험용"이라고 해명했지만, 옹색하다. 제주투데이 보도 후 제주도는 태양광시설을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슬며시 정류장 지붕 바닥에 밀착시켜 놓았다.

제주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인근 섬식정류장. 낮 11~1시에도 태양광 시설이 남쪽 빌딩 그늘에 가려져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태양의 고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정상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제주투데이 보도 후, 태양광시설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정류장 지붕 바닥에 밀착시켜 놓았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인근 섬식정류장. 낮 11~1시에도 태양광 시설이 남쪽 빌딩 그늘에 가려져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다. 태양의 고도가 낮은 겨울철에는 정상 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제주투데이 보도 후, 태양광시설이 외부에서 보이지 않도록 정류장 지붕 바닥에 밀착시켜 놓았다.(사진=김재훈 기자)

#저상버스 도입 취지 내려놓고 정류장 설계하기

국토교통부의 '고급간선급행버스체계 표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정류장 바닥과 저상버스 출입구의 높이 차이는 2cm 이하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주도의 섬식정류장은 이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차도에서 정류장 바닥 높이를 25cm로 설계했다. 버스 출입구와의 높이 차이가 12cm에 달한다. 이로 인해 휠체어 및 유아차 이용자들이 저상버스 승하차 시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제주도가 도입하는 BRT를 '고급'이라 말할 수 없게 됐다.

이렇듯 제주의 섬식정류장 설계는 저상버스 도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양문형 저상버스 제조업체 관계자는 제주투데이에 정류장과 버스 바닥 높이 차이가 적을수록 좋다고 밝혔다. 타 지자체는 정류장과 저상버스 출입구의 높이 차이를 줄이는 정류장 설계를 통해 장애인 및 교통약자를 넘어 누구나 편한게 저상버스에 탑승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제주도의 섬식정류장으로부터 배워야 할 네 가지 교훈

  1. 장애인 및 교통약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야 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장애인 단체 및 교통약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주도처럼 의견 수렴을 사후에 하게 되면 논란만 키우며 행정력 및 사회적 비용을 낭비할 수 있다.
  2. 저상버스 도입 취지를 살리는 설계 및 표준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한다. 국토교통부의 표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이용자들이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장애인과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높이고자 도입한 저상버스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현장 실사와 기술 검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시설 설치 전 주변 환경과 기술적인 부분을 철저히 검토해 비효율적인 시설 설치로 인한 예산 낭비를 방지해야 한다.
  4. 보여주기식 디자인에 매몰되지 말고 편의성과 안전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적 요소보다는 이용자의 편의성과 안전성을 우선시하는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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