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및 교통약자의 편의, 안전을 위한 고민을 충분히 담지 않은 섬식정류장의 설계 문제가 드러났다.
제주도는 최근 제주시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일대에, 섬식정류장을 설치했다. 양문형 저상버스를 도입해 한 곳의 도로 중앙 버스정류장에서 양방향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오영훈 제주지사는 "양문형 버스와 섬식정류장은 대중교통의 새로운 혁신시스템을 제공하는 대한민국 최초의 시도"라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제주투데이 취재진이 장애인 당사자들과 섬식정류장을 직접 동행 취재해보니 섬식정류장은 오 지사가 말하는 혁신과 거리가 멀었다. 장애인이 이용할 수 없는 편의시설이 있는가 하면, 장애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분도 확인됐다.
11월 7일 오전, 취재진은 제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김홍주 팀장, 이지혁 대리, 문채영 활동가, 근로지원인 등과 함께 섬식정류장을 찾았다. 동행 취재에서 섬식정류장에서는 장애인들이 겪게 될 불편 및 위험 요소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애인 당사자들은 개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시각장애인을 오히려 혼란하게 만드는 점자블록
횡단보도를 건너서 섬식정류장으로 진입할 때부터가 문제였다. 시각장애인에게 길 정보를 전달하는 점자블록에는 두 종류가 있다. 선형블록과 점형블록이다. 점형블록은 주변 환경이 바뀌는 지점이다. 시각장애인은 이동하다가 점형블록에서 멈추거나 상황을 살피게 된다.
섬식정류장 진입부에는 점형블록이 5m가 넘는 길이로 설치돼 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이동 방향을 유도하는 선형블록은 정 가운데에 한 줄 설치되어 있을 뿐이다. 중앙 지점이 아니면 선형블록을 찾을 확률이 높은 중앙부가 아니면 어느곳으로 이동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정류장 보행로 중앙에 식재된 나무를 빙 둘러 설치한 점자블록도 시각장애인을 혼란케 한다. 정류장 가운데에 심어놓은 나무는 특히 문제다. 정류장의 심미성을 위해 심은 나무는 장애인의 보행 편의를 크게 해치고 있다. 나무를 피해 이동하다가 차도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시각장애가 있는 문채영 활동가는 "점자블록이 복잡해 헷갈린다. 현재 설치된 점자블록은 섬식정류장에 진입한 뒤부터 내가 버스 승강장으로 쪽으로 잘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다른 곳보다 더 심하다"고 지적했다.
문 활동가의 근로지원인 A씨는 "중앙의 나무는 시각장애인이 걷다가 부딪힐 위험이 크다"면서 "점자블록 가까이에 도로 사이에 난간이 없다 보니 조금만 몸을 기울이면 밖으로 떨어질 수 있다. 비장애인과 같이 섞여서 통행을 해야 할 때 부딪힐 수 있지 않나. 밀려서 차도로 넘어질 수도 있다."고 안전상의 문제를 거론했다. A씨는 "차도로 떨어지지 않도록 난간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도 말했다.
단순 보행 편의 개선 문제가 아니라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나무를 뽑고 난간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이지혁 대리도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휠체어 이용자 입장에서도, 중앙의 나무를 피해 차도 쪽으로 붙어서 한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중앙의 나무는 제거해야 할 것 같다." 고 말했다.
정류장 보행로의 높은 경사도..."휠체어가 뒤로 넘어갈 수도"
정류장 보행로의 경사도가 높아 휠체어 이용자들에게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이 대리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해 실제 올라와보니 경사도가 높다. 큰 문제는 없지만 휠체어가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수동휠체어는 뒤로 넘어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고 우려를 표했다. 휠체어를 이용해 섬식정류장의 경사를 올라갈 때 무게중심이 뒤로 쏠리면서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 중 팔 근력이 약한 경우에는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기울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또, 이 대리는 차도와 정류장 진입부의 턱을 최대한 낮춰야 휠체어 이용자가 턱을 만나 중간에 멈추지 이동할 수 있다며 개선을 당부했다. 현재 차도와 정류장 진입부의 높이 차이는 약 2cm 가량. 완만한 경사를 가진 연석을 활용하는 방식 등을 활용하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사안이다.
"비장애인만 테이블 이용하나?...장애인도 테이블 잘 이용한다"
실내정류장에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테이블을 설치해두었다. 하지만 테이블 의자는 바닥에 고정돼 있다.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할 수 있는 별도의 테이블 시설은 없다. 이 대리는 "휠체어 이용자들도 테이블 잘 이용한다.(웃음) 하지만 의자가 바닥에 고정 설치돼 있어 휠체어 이용자는 테이블을 이용할 수 없는 상태"라고 아쉬워 했다.
이어 "테이블 외에도, 휠체어 이용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데 그런 자리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도 말했다. 문 활동가도 "점자블록 주변 90cm 이내에는 구조물을 설치하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고정의자가 설치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불편과 위험을 초래하는 요소들이 산적한 섬식정류장의 공사는 현재 거의 마무리 되었다. 제주도는 30일까지 의견을 수렴한다고 한다. 공사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오영훈 제주도정이 얼마나 수정 및 보완하려 들지는 의문이다. 애초 설계를 할 때 장애인 당사자들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 이처럼 교통약자를 위한 혁신과 동떨어진 결과를 자초했다.
이 대리는 "설계할 때 장애인 당사자와 논의를 하면 잘 알 수 있을 텐데, 대화가 없었으니 이런 부분들이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문채영 활동가도 "제주도 버스정류장에 점자블록이 잘 설치되어 있는 곳도 많지 않을뿐더러 음성 서비스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가 태반인데, 섬식정류장은 음성 서비스가 잘 될지 나중에 다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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