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이도이동 소재 '한뼘책방'. '금요일의 아침, 조금' 카페와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이도이동 소재 '한뼘책방'. '금요일의 아침, 조금' 카페와 함께 운영되고 있다. (사진=요행)

봄날의 햇살 같아.”

ENA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가 상당하다. 남방큰돌고래와 그 고래가 사는 제주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 괜히 더 마음이 쏠린다드라마를 봤다면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상황에서 한 말인지 알 것이다. 책방을 찾아 들른 제주시 이도이동의 마을도 봄날의 고향같은 따스함을 물씬 풍긴다.

책방지기의 말에 따르면 이 마을은 생긴 지 약 30년이 됐다. 수많은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설렘을 안겼을 놀이터와 너무 크지도, 높지도 않은 빌라와 집들. 아스팔트가 깔려 있지만 그 당시 형성된 마을들이 그러하듯 특유의 좁은 골목길들. 무엇보다 놀이터를 중심으로 심어진 나무가 참 따스하다. 캔버스에 이곳을 그리고 색칠한다면 조금은 흐린 듯 따스한 파스텔톤 색상으로 채색될 것 같다.

한여름의 열기가 아닌 봄날의 따스함을 마구 전하는 이 마을에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책방이 있다. 이름도 귀여운 한뼘책방이다.

책방을 찾아 나선 길이 아니었다면 지나쳤을 것 같은 곳에 수줍게 있는 책방. 마을이 형성될 때부터 그 자리에 쭉 있었던 듯 모나지 않고, 튀지 않은 단정한 모습. 내부와 외부는 시간을 잔뜩 입은 것들로 채워져서 포근함을 안긴다.

한뼘책방 내 서가. 옆문으로 나가면 작은 정원이 있어 오붓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사진=요행)
한뼘책방 내 서가. 옆문으로 나가면 작은 정원이 있어 오붓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사진=요행)

금요일의 아침, 조금과 한 뼘 책방

한뼘책방은 카페 금요일의 아침_조금 안에 있는 한 뼘만 한 책방입니다. 카페 조금은 두 뼘만 하거든요.”

책방지기가 SNS에 한뼘책방을 소개한 글이다. 이곳은 금요일의 아침, 조금이란 카페와 공간을 나누어 쓰고 있다. 이름 그 자체도 참 예쁜데 뜻도 예쁘다. 주말을 앞두고 있는 금요일 오전엔 사람들의 얼굴에 설렘이 묻어나곤 한다. 그런 금요일의 아침 같은 공간이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 , 책방지기의 이름 조은영과 남편의 성인 을 합쳐서 조금이라고도 한다. 의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곳을 열고 강아지 한 마리를 새 가족으로 맞았는데, 그 강아지의 이름이 조금이다. 카페와 책방의 마스코트로 사랑받고 있다.

이곳은 물리적인 공간의 크기가 작아서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책방이 있다는 생각에 지었다고 한다. 언젠가 저 책을 읽어야지.’, ‘이번 달엔 이 책을 읽어야지’, ‘내년엔 100권의 책을 읽어야지.’ 등등 책에 대한 계획을 품고, 자신만의 도서 목록을 정리하는 마음속의 작은 책방. 그 책방을 실사로 표현해낸 곳이다.

카페가 먼저 문을 열었고, 1년 후 책방 문을 열었다. 책방지기는 책방만 운영할 용기가 없어서 카페와 함께 운영하게 됐다고 했다. 제주 이주 11년 차. 이주라는 표현은 좀 부적절하고, 귀향이 맞겠다. 손재주가 좋은 남편은 제주 출신이고, 말솜씨가 좋은 아내는 외가가 제주다. 아내 역시 어릴 때는 제주에서 자랐다고 한다.

한뼘책방의 마스코트 '조금'. 왼쪽 사진은 책방지기 지인이 그린 조금이다. (사진=요행)
한뼘책방의 마스코트 '조금'. 왼쪽 사진은 책방지기 지인이 그린 조금이다. (사진=요행)

제주로 귀향 후 서울을 오가며 생업을 하는 것이 무척 힘에 부쳤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제주에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부부의 손맛이 좋아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런데 요식업은 이 부부가 해왔던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했었다. 둘 다 책을 워낙 좋아하고, 손에 먹거리를 드는 일보다 책을 들고 있던 시간들이 훨씬 길었던 터라 책에 대한 갈증이 깊어져 갔다. 제주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자니 선뜻 손 뻗기가 고민됐다. 그쯤 제주를 비롯한 전국에 동네책방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을 타고 그들의 생각을 오롯이 담을 책방 운영에 뜻을 품게 됐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책방만 운영하는 것은 적잖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생업이 돼야 하는데 책방 운영만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는 것은 참 어려운 현실이었다. 그래서 카페와 책방을 함께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이 생각은 무척 적절했다. 책방은 문을 연 그때부터 지금까지 완벽한 적자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포기할 생각도 없는 것은 책방이 가진 어마어마한 매력 때문이다.

건물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나이가 든 건물이다. 차고지였던 곳을 카페 겸 책방으로 바꾸니 공간이 아담하다. 책방지기의 취향이 시간을 입은 것을 좋아해서 손때가 묻고 낡고, 허물어진 것들로 포인트를 줬다. 전자기기를 제외하고 오래된 것들로 꾸며진 공간이라는 것이 보드라운 묵직함을 안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워낙 빨리빨리에 익숙해서 시간을 입은 것들의 가치를 간과하는 편이다. 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내고 견뎌낸 견고함의 가치를 아는 이 책방 또한 그렇게 한 자리를 오래 지킬 것 같은 기대감을 준다.

정원에서 책방 내부를 바라본 풍경. (사진=요행)
정원에서 책방 내부를 바라본 풍경. (사진=요행)

마음, 확장의 한계가 없는 공간

한뼘책방은 올해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 사업은 지역 거점 서점과 작은 서점, 작가 간 탄탄한 연계를 목적으로 한다. 서점과 작가에는 지원금을 지원하고, 시민들에게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으로 한뼘책방과 달책빵, 책자국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시옷서점과 어나더페이지, 아무튼 책방도 한 팀을 이뤄 이 사업을 진행 중이다.)

한뼘책방은 이로 인해 장혜령 작가와 함께 6월부터 10월까지 사람이 책이 되는 라디오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6월 한 달과 7~8월에 걸쳐 또 한 차례 진행해보니 호응이 좋았다. 그래서 프로그램 참가자들끼리 따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은영 책방지기는 현재 우리나라 책방 운영 상황에선 지원사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책방의 존재를 알리고 그 책방뿐 아니라 다른 책방의 역할, 가치를 함께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제주의 작은 책방이 작가를 초청하는 자리를 마련하려면 자비를 털어야 한다(작가의 거주지가 뭍지방이라면 비용은 더 발생한다). 이런 프로그램은 특성상 참가비를 받지 않고, 받더라도 소액이니 마련하고 싶어도 부담이 크다

은영씨는 책방이 지원사업을 하는 이유를 현실적 어려움, 그러니까 생업 유지의 어려움과 지원사업을 통해 문화의 장을 넓히는 것으로 들었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 전자의 이유로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책방의 비율이 높다. 은영씨는 이 부분이 해결이 돼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책방들이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는 가운데에 이런 지원사업을 하면 책방도 지역주민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더 고품질의, 더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사업이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은영 책방지기와 조금이. (사진=요행)
조은영 책방지기와 조금이. (사진=요행)

한뼘책방은 공간은 작지만 넓은 세계를 펼쳐 보이는 책들과 모임을 통해 찾는 이들의 마음을 살찌우고 있다. 책은 혼자만 보면 자신만의 소유가 되지만, 함께 나누면 우리의 것이 된다. ‘우리라는 연대가 형성되면 서로의 우주에 충격을 가해 더 넓은 우주가 만들어진다.

마음이란 확장의 한계가 없는 공간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저지르는 가혹한 직무유기 중 하나다. 무한의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자꾸만 경계를 지으려는 것. 한 뼘만 한 공간에 세상과 우주를 가져다 놓는 이 책방에서 그 경계에 금이 가는 동요가 일기를그 기분 좋은 혼란스러움에 온전히 마음을 맡겨 보기를 추천한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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