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사진=요행)

한 해 동안 새로운 책 7만 종이 생산된다고 한다. 한 달에 200종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1종당 100권이 생산된다고 해도 700만 권이다. 그렇다면 이 책들은 모두 소비가 될까? 잘 알고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선택받지 못한 책들은 어디로 갈까? 

언젠가 누군가 대화를 하던 중 ‘책들의 무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생산과정에서 착오가 있던 책, 재고로 쌓인 책들이 모이고 쌓여 있는 걸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이곳으로 모인 책들은 다시는 그곳 밖으로 나올 일이 없다. ‘쓸모’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쓸모를 상실한 비운의 책들이다. 

반면, 세상에 나온 지 꽤 됐지만 여전히 쓸모를 가지고 생을 이어가는 책이 있다. 움트는 책방에 있는 책들의 이야기다. 한 눈에 봐도 나이가 많은 책에서부터 도서계의 신생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윤이 나는 책들까지. 신구의 만남이 조화롭다. 서가 한켠에는 ‘절판’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그렇다! 이곳에서는 절판된 책들을 만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가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책의 구판, 더 나아가 초판을 만나는 행운도 기대할 수 있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내 녹색평론 시리즈.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내 녹색평론 시리즈. (사진=요행)

책들의 무덤으로 가지 않고 움트는 책방에 모인 책은 어떤 운이 따랐던 걸까? 좋은 책이었기에 가능했고 무엇보다 그 책을 선택한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책을 소비하기로 마음 먹은 최초의 사람 말이다. 그러니, 책을 사는 일은 무덤을 향하는 책을 줄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소비의 과정을 거친 책은 누군가의 서재에 남아 있을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또한 이렇게 사람들의 손과 손을 거쳐 헌책방에 모이기도 한다. 헌책방으로 모인 책들은 이전 주인들의 사연이 담겨 있기도 해서 일면식 없는 타인의 삶을 살짝 들춰보는 경험하게 된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본 이가 인상 깊게 읽은 구절에 칠해놓은 펜 자국이나 책 앞장에 적힌 짧은 소회 등을 마주치면 이 책을 읽었던 그의 시간이 궁금해진다. 밑줄 그은 문장을 괜히 한 번 더 곱씹게 되고 책에 쓰인 짧은 쪽지를 보고 또 보게 되는 것이다. 

그건 그이가 당시에 가졌던 희망이었을까, 고통이었을까. 10대의 방황이었으려나, 20대의 애끓는 청춘의 한 단면이었을까. 어쩌면 30, 40대 가장의 무게고, 부모의 마음이었으려나. 

헌책을 사고 읽는다는 것은 이전에 이 책을 읽은 누군가와 함께 그 책을 읽는 셈이다. 책에 쓰인 쪽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해서 이 책, 저 책을 골라보게 되는 재미가 이 책방엔 있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소장용 도서에는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소장용 도서에는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의 절판도서에는 노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의 절판도서에는 노란 스티커가 붙어있다. (사진=요행)

책 가격은 책의 상태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거의 새 책인 경우 원가의 약 80%다. 보통은 원가의 60%, 좀더 오래되고 낡은 책은 원가의 30%를 받는다. 헌책방이라고해서 헌책만 있는 건 아니다. 독립출판물의 경우는 대부분 새 책이다. 새 책은 당연히 원가로 판매된다. 판매하지 않는 소장용도 있는데, 대부분 그림책이다. 이 책엔 표지에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다. 또, 절판책의 경우는 노란스티커가 붙어있다. 

6명의 책방지기의 다양한 성향만큼 보유하고 있는 책의 장르와 주제가 다양하다. 시, 소설, 에세이처럼 '올타임 레전드' 종과 함께 페미니즘과 심리학, 철학, 글쓰기, 경제, 정치, 자기계발류 또, 녹색평론과 같은 잡지와 아동·청소년 문학 전집, 세계고전문학 전집도 만날 수 있다. 책은 꼭 구입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이때 소정의 이용료를 치러야 한다. 시간당 3000원으로 음료와 과자가 제공된다.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내 '시인의 방'.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내 '시인의 방'. (사진=요행)

책방 깊숙한 곳에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움트는 책방지기들이 책방 운영을 하게 한 그 이유! 바로, 모임 공간 ‘시인의 방’이다. 이 공간의 이용료는 시간당 단돈 5000원. 1인에서 최대 10인이 사용할 수 있다. 책방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운영하지만 이 공간은 휴무 없이 열려 있다. 책방지기들도 이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서, 영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는데 움트는 책방 인스타그램에 수시로 프로그램 일정이 올라오니 참고하면 좋겠다. 

이 책방의 또 하나의 히든카드는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 코너다. 제주시 구좌읍에 자리한 해바라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만든 굿즈들이다. 판매 수익금은 그 아이들과 마을발전기금으로 쓰인다. 그 뜻을 응원하고 싶어서 코너를 만들어서 판매 중이다. 연대와 사회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책방지기들이다. 

움트는책방의 프로그램. (사진=요행)
움트는책방의 프로그램. (사진=요행)

여섯 명의 책방지기들을 모두 만날 수 없어서 서면으로 책방의 장점, 특징을 물었다. 답변이 의미있으면서도 제각각이었다. 그 중 유현 책방지기의 말에 특히 마음이 끌렸다. 

“LP수집이 취향인 책방지기가 있어 책방에서 다양한 LP음악이 재생돼요. 또, 시를 좋아하는 책방지기 덕분에 책방 가장 큰 곳에 매달 책방지기 추천 시를 적어 두고요. 그래서 우리 책방을 방문하면 적어도 LP노래와 시 한 편은 마음에 담고 가게 됩니다.”

나는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만 아날로그 감성을 굉장히 사랑한다. 디지털은 즉각적이지만 아날로그는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아날로그가 살아남아 그 특유의 불편함과 감성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제한된 자유 속에서 행복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아날로그가 주는 편안함과 여운을. 

당장 인터넷을 연결해 전자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책방을 찾아 책을 보고 사는 일. 휴대폰 앱을 통해 즉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음악다방을 찾아가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 나오기를 기다리는 일.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5분간은 그 공간과 시간의 주인공이 되는 일.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에서는 LP음악을 들을 수 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에서는 LP음악을 들을 수 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내 시집 코너. (사진=요행)
제주시 노형동에 위치한 '움트는책방' 내 시집 코너. (사진=요행)

모두가 오감을 활용해야 이룰 수 있는 일들이다. 그 감각은 세포에 깊숙이 새겨져 그때의 향기가, 그때의 색채가 겹치는 날에는 옛 추억을 한순간에 현실로 불러온다. 그래서 움트는책방은 그 시절 그때의 그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특히 더 친숙하고 편안할 공간이다. 그 감성을 추억하고 경험하고 싶다면 일부러라도 찾아와야 할 곳이란 말이다.

청년들의 패기로 신선한 공기가 가득하고, 그 어느 날의 추억이 담긴 책들로 따스한 온기가 있는. 청소년들에겐 ‘헌책방’의 경험을 전달해 명맥을 이어가게 하는 곳. 움트는책방은 참 야무지다. 

 

책방지기의 추천 책

<상주 책방지기인 유리님의 추천책>

(사진=요행)
(사진=요행)

#. 조지오웰 <동물농장>, <1984> 

정치권력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우화인 <동물농장>.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박탈하는 전체주의와 그 속에서 인간이 맞이하는 비참함 말로를 묘사한 <1984>. 유리 책방지기가 청소년 시절에 무척 재밌게 읽은 책으로 청소년들에게 추천했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60년대 체코와 1970년대 유럽을 뒤흔들어 놓은 무거운 역사의 상처와 개인적 트라우마를 어깨에 짊어진 네 남녀의 생과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사진=요행)
(사진=요행)

#.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자폐증을 앓는 열다섯 소년이 이웃집 개의 살해 사건에 연루됐다. 소년은 누명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고 세상에 노출되는 등 성장해 나간다. 

#. 바네사 스프링고라 <동의> 

저자가 13세 때 처음 만났던 유명 작가와의 성착취 관계를 폭로하고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몇십 년간 공고히 다져진 프랑스 문단의 위선을 낱낱이 고발하며 프랑스 문단 미투 운동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책이다. 

 

※움트는 책방은 제주시 다랑곶4길 46 지하에 있어요.

매주 목~일 낮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고요.

월~수는 휴무예요. 

공간 대여는 연중무휴로 운영됩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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