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을 캔다. 아니 낫으로 벤다. 올해 처음 유기질 비료를 주어서인지 너풀거리는 잎들이 실하다. 아내가 감귤나무까지 가린 쑥들을 보며 “감귤밭에 쑥이 아니라 쑥밭에 감귤나무”라고 핀잔을 한다. 뱀에 놀란 적이 두 번이나 있어서 감귤 딸 때가 아니면 과수원에 오지 않는 아내가 이번에 따라나선 건 조카가 곧 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첫딸이 태어나자 형수님이 쑥 한 포대를 가져다주었다. 어머님 지시로 쑥을 헌 스타킹에 한 움큼씩 담아 창고 천장에 매달았다. 쑥이 마르면서 늘어진 스타킹 240개가 바람 불 때마다 흔들렸다. 스타킹 개수가 줄어들 때마다 아이는 새 몸으로 태어났다.
필자가 끓인 물을 대야에 붓고 쑥이 든 무명천 주머니를 넣는다. 아내가 찬물을 조금씩 붓는다. 어머니가 손목 안쪽으로 온도를 가늠한다. 어머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필자는 아이의 등, 목, 머리를 한쪽 팔로 받치고, 베수건에 쑥물을 적셔 머리를 감기고 얼굴을 씻긴다. 아내가 마른 수건으로 닦아준다.
아이를 대야 속에 앉힌다. 부드러운 피부를 거친 삼베 수건으로 닦는다. 깔아놓은 목욕수건에 아이를 눕힌다. 아내가 물기를 깨끗이 닦아낸다. 어머니가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에 분을 칠한다. 아내가 배냇저고리를 입힌다. 필자가 옷을 마저 입힌다.
세 식구가 합심해서 아이를 목욕시키는 것은 기쁨 자체였다. 아이는 물에만 들어가면 방글거렸고, 방글거리는 웃음은 세 식구에게 전염되었다. 결혼 기념으로 울타리 주위에 심은 페퍼민트들까지도 살랑거리는 바람에게 가벼운 미소를 보낸다.
기후가 습한 제주에서는 삼베로 만든 복뒤창옷(배냇저고리)을 초사흘 되는 날부터 아기에게 입혔고, 쑥물 적신 삼베로 목욕시켰었다. 피부병을 예방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피부를 단련시켰던 것이다.
쑥은 몸의 독소를 빼주고, 기(氣)와 혈(血)을 잘 돌게 하여 몸을 따뜻하게 한다. 따라서 쑥 물로 목욕하면 가려움증이나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과 생리불순이나 냉대하 등 여성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고조선 건국 신화에 쑥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쑥은 우리 민족이 형성될 때부터 상비약이나 구황식물로 이용돼왔음을 알 수 있다. 조상들은 삼월에 쑥전을 지져먹었고, 단오 무렵에 캐서 그늘에 말린 쑥인 약애(藥艾)라고 해서 지혈, 복통에 사용했으며, 쑥 잎의 흰털을 모아 쑥뜸을 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름철에 화톳불로 피워 모기를 쫓았고, 꿀을 딸 때도 쑥을 태운 연기로 벌들을 진정시켰다. 독자들도 어릴 때 상처가 나면 쑥을 짓이겨 차 맨 경험이 다들 있었을 것이다. 8∼9월에 노란 꽃이 피는 개똥쑥은 황화호(黃花蒿)라 하여 발열 감기나 어린아이의 열성경련, 이질 등을 치료할 때 사용하며 피부염에도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
사철쑥인 인진쑥은 담즙분비 촉진작용, 이뇨 작용, 해열 작용이 있어 간염, 황달, 위염 등의 치료에 쓰인다. 위염 치료제인 베아렌투엑스정, 스티렌정, 오티렌정도 쑥을 원료로 사용한다.
쑥은 쓴맛이 강해서 씀바귀와 함께 쓴 나물의 대명사다. 쓴맛은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해충이나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 내는 방어물질이다. 이물질이 인체 내에서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
브로콜리, 양배추, 케일 등 배추과 채소의 항암효과는 쌉싸름한 맛을 내는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 성분에 기인한다. 녹차의 카테킨(catechin), 양파의 퀘르세틴(quercetin), 콩의 이소플라본((isoflavone) 역시도 강력한 항산화제인 폴리페놀화합물로 세포손상과 노화를 방지하는데, 이 물질들 역시 쓴맛을 낸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속담은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조상들이 봄에 즐겨 먹었던 냉이, 달래, 쑥, 씀바귀, 민들레 등 쓴맛을 내는 산채는 밥상의 먹거리이자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 것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쓴맛을 내는 채소를 싫어한다. 어린아이들은 그 경향이 더하다. 이런 식생활을 인류가 계속하게 되면 쓴맛을 느끼는 혀의 감각세포는 퇴화할지도 모른다. 달면 뱉고 쓰면 삼켜야 건강에 좋다.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나서 제일 먼저 돋아난 것은 쑥과 쇠뜨기였다. 그만큼 쑥은 생명력이 강하다. 폐허로 변한 땅을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는데, 쑥은 어디에서나 빨리 자란다. 잡초로서 쑥은 골치 아픈 녀석이지만 그 생명력만큼은 정말이지 본받고 싶다. 조카가 낳을 아이도 어디서나 쑥쑥 자라는 쑥처럼 생명력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아내가 금방 쑥으로 가득 채워진 콘테나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잡초를 매지 못한 게으름이 아내에게는 기쁨을 준 것이다. 아내가 쑥 지지미에 막걸리 한잔하자며 어린잎을 고르라고 한다. 핀잔을 말든지 기뻐하지 말든지 오십대 남편은 아내 비위 맞추기가 이래저래 힘들다. 그래도 막걸리 마실 생각에 웃음이 귀에 걸린다.
“아내여! 우리도 웅녀처럼 쓴 쑥 먹고 사람 좀 되어보자”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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